[세계의 영성 작가] 순종의 십자가 지고 삶으로 예수를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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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신학자이자 목사인 디트리히 본회퍼(1906~1945·아래 사진). 그는 ‘독일의 행동하는 양심’으로 불린다. “­악을 보고도 침묵하는 것은 그 자체가 악이다.” “미친 운전자가 행인들을 치고 질주할 때, 목사는 사상자의 장례를 돌보는 것보다는 핸들을 뺏어야 한다.” 그가 남긴 말이 시대의 변화에도 아직도 회자되고 있는 이유는 ‘실천하는 영성’이 현대에도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다정한 굴레’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다정한 굴레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십자가를 지는 ‘순종의 삶’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다정한 굴레를 진심으로 따르는 것, 그런 순종이 ‘값진 은혜’이다.
 
값싼 은혜 vs 값비싼 은혜

그는 삶을 신학하듯 살았고, 신학을 삶으로 보여주었다. 그리스도, 교회, 세상이란 키워드를 신학의 중심으로 삼았다. 대표작 ‘나를 따르라’(1937)는 당시 독일교회를 향한 통렬한 비판이 담겨 있다. 교회가 충분히 그리스도를 섬기지 않고 ‘값싼 은혜’를 나누고 있다고 비평했다. 그가 말하는 값싼 은혜는 ‘죄에 대한 고백이 없는 성만찬, 죄에 대한 회개 없이 용서받을 수 있다는 설교, 예식을 무시한 세례, 회개가 없는 면죄의 확인’이다. 성례전을 통해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 값싸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그가 말하는 값싼 은혜는 그리스도를 따름에 따른 고난이 없는 은혜, 성육신의 실천이 없는 은혜이기도 하다. 제자로서의 삶이 없는 신앙은 싸구려 신앙에 불과하다는 것. 참된 은혜는 값비싼 희생을 통해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 달리시고 고통을 견디시고 대가를 치르셨으니, 우리도 희생적으로 살면서 타자를 섬겨야 한다는 것이다. 비기독교인처럼 살면서 면죄를 받으려고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만 교회에 오는 것은 값싼 은혜이다.

“값싼 은혜는 회개가 필요하지 않은 용서의 설교요, 교회의 규율이 없는 세례요, 죄의 고백이 없는 성찬식이요, 개인적인 참회가 없는 면죄이다. 값싼 은혜는 제자도가 없는 은혜요, 십자가가 없는 은혜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살아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은혜이다. 반면에 값진 은혜는 들판에 숨겨진 보물이다. 이를 위해 사람들은 기쁘게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가져가서 팔 것이다. … 값진 은혜는 쇠약한 영혼과 회한에 찬 마음에 다가오는 용서의 말씀이다. 그러한 은혜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굴레를 받아들이고 그를 따르게 하므로 값진 것이다. ‘그리스도의 굴레는 편하고 그리스도의 짐은 가볍기에’ 은혜인 것이다.”(‘나를 따르라’ 중)

‘나를 따르라’는 1930년대 독일 교회가 히틀러에게 굴복한 충격적인 사건을 기억해야 더 깊이 읽을 수 있다. 독일 교회는 예언자적인 목소리를 내고 저항하기는커녕 오히려 히틀러를 그리스도로 숭배하고 있었다. 당시 독일 교회는 하나님이 영혼 구원을 위해 예수를 보내 주셨듯이 지금 독일의 ‘경제적, 사회적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히틀러를 보내주었다’고 주장했다.

그런 와중에도 반유대주의를 수용하지 않는 이들은 고백교회를 설립했다. 본회퍼는 고백교회를 위한 새로운 신학교를 이끌었고 나치의 탄압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잘못된 지도자에게 힘을 실어주는 독일 사회와 그 지도자가 내세우는 반유대주의에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시했다. 기독교 신앙은 방에 조용히 혼자 머물며 충실히 신심을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예언자적인 목소리를 냈고, 결국 방송은 중단됐다. 신학자 칼 바르트의 표현을 빌리면 하나님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야 할 교회가 히틀러를 그리스도로 따르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지적한 것이다.
 
원수의 한복판에서

그는 삶을 변화시키는 제자도를 추구했으며 자신의 삶으로 그것을 예증했다. 진정한 제자가 되는 것은 예수를 따르는 것이며 그분께 온전히 우리를 바치라고 당부한다. 그는 그리스도를 고백적으로 증거하는 신앙결단에 따라 1941년 히틀러 암살 계획에 가담, 1943년 체포됐다. ‘옥중서신-저항과 복종’(1954)은 1년 6개월 동안 베를린 테켈 교도소에서 가족과 친지들에게 보낸 편지를 묶은 것이다.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조금도 비굴함이 없었던 그는 한 인간으로서는 나약한 존재였음을 하나님 앞에 드러낸다. 1944년 7월 베트게에게 보내는 편지에 함께 보낸 시 ‘나는 누구인가’는 이런 내면이 잘 느껴진다.

“나는 누구인가. 남들은 종종 내게 말하기를 감방에서 나오는 나의 모습이 어찌나 침착하고 쾌활하고 확고한지 마치 성에서 나오는 영주 같다는데 나는 누구인가…. 사람들 앞에서는 허세를 부리고 자신 앞에선 천박하게 우는 소리 잘하는 겁쟁이인가 내 속에 남아 있는 것은 이미 거둔 승리 앞에서 꽁무니를 빼는 패잔병 같은가. 나는 누구인가. 고독한 물음이 나를 조롱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당신은 아시오니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오 하나님.”(‘옥중서신-저항과 복종’ 중)

1945년 4월 9일 새벽, 플로센부르크 수용소에서 39세의 나이로 교수형으로 처형됐다. 유언은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한 삶의 시작이다”였으며 묘비에 새겨진 문장은 ‘디트리히 본회퍼 그의 형제들 가운데 서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다.

증인의 삶을 살다간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수님이 주시는 다정한 굴레를 써 보았나’란 질문을 남겼다. 고백교회 시절 신학교 교재로 사용하기 위하여 집필한 ‘성도의 공동생활’(1939)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예수 그리스도는 원수들 한복판에서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행악자와 조롱하는 자들에게 둘러싸인 채 완전히 홀로 남겨졌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라면 수도원적 은둔생활이 아니라 원수들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리스도인이 감당해야 할 일과 사명이 바로 그곳에 있는 까닭입니다.”

본회퍼는 심오한 지식이나 강력한 메시지로 구체적인 행동에 전념하라고 강조한다. 씨앗에 담긴 생명력처럼 그리스도인에겐 복음의 능력이 있다. 그가 살아 있다면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씨앗으로 흩어져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할 것 같다.

이지현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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