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사람을 채울 것인가, 종 한 사람을 세울 것인가

이강우 서울 좋은나무교회 목사(오른쪽)가 지난달 청소년 및 부교역자와 함께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복되고 보람된 것이 있다면 생명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이다. 이는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이기도 하다. 교회는 생명 살리기에 집중해야 한다.

건강한 교회는 구성원 하나하나가 한 영혼에 집중하는 교회다. 누가복음 15장의 잃은 양의 비유는 한 영혼에 대한 사랑을 가르쳐 준다.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들판에 두고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다니는 목자의 모습 속에서 일반 가치관을 넘는 진리를 발견하게 된다.

15년 전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 들은 이야기다. 한 마리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귀한 것은 잃은 한 마리가 전체 양 무리를 이끄는 리더 양일 경우라는 것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해의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요 11:50~52)

성경은 처음 아담부터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까지 분명한 ‘대표성’을 나타내고 있다. 예수님은 민족의 대표로 나타나시고 장차 온 민족을 대표하심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을 모신 그리스도인도 민족을 제자 삼는 대표성을 띠는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라면 ‘민족을 제자 삼으라’는 이 말씀의 함의를 알고 순종해야 한다. 주님은 성도를 그 사역에 상응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고 그 일을 맡기신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모신 한 사람을 세우시고 그를 통해 민족을 제자 삼으라고 하신다. 성도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이 민족을 대표하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한 영혼에 집중해 리더로 세우라는 성경적 원리다.

그리스도인이 누군가를 제자 삼는다면 당연히 그를 리더로 세우는 사역이 있어야 한다. 문제는 교회와 성도들이 이 진리를 따르기보다 눈앞의 다수에 끌려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우선시한다는 것이다.

물론 아흔아홉 마리 양에 대한 보호를 잠시 보류하고 한 마리에 관심을 집중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교회는 머리이신 예수님께서 교회를 책임져주신다는 확신을 갖고, 말씀대로 한 영혼을 그리스도를 모신 지도자로 세우고자 집중해야 한다. 그때 그들을 통해 상상도 못 할 일들을 이뤄 가신다.

서울 좋은나무교회에서는 지난 20년간 한 영혼을 세우는 목회를 지향해왔다. 교회에 속한 모든 영혼을 똑같이 대하고 고르게 가르치는 목회방식이 어쩌면 지름길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방식으로는 결코 진정한 제자, 리더가 될 한 영혼을 키워낼 수 없다. 주님께서 한 사람을 택하시고 다수를 다스리신 성경적 방법을 목회에도 그대로 적용해야 한다.

한국교회 목회자는 지금이라도 한 영혼을 리더로 세우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처음에는 많은 어려움과 지체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각 영역과 세대에 분명한 리더가 세워지고 역동적인 교회가 될 것이다.

지난달 음란물에 빠진 한 청소년을 회복시키기 위해 영하 20도가 넘는 혹한의 날씨에도 4명의 교역자가 지리산 등반에 나섰다. 아이는 두려움이 컸는지 등반을 거부하고 경남 하동에서 서울로 올라오고 말았다.

부모는 단호하고 간곡하게 아이를 설득했다. 돌아온 아이는 15시간이 걸려 지리산 천왕봉을 등반했다. 목적은 아이에게 권위와 의지력을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등반을 마친 아이가 이렇게 이야기했다.

“목사님, 저는 그동안 저 자신에게 속아왔습니다. 정상에 도저히 못갈 것으로 생각했어요. 목사님들과 같이 이 길을 가니 얼마든지 갈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저 자신에게 더이상 속지 않겠습니다. 모든 음란물을 끊고 기도와 독서에 힘쓰겠습니다.”

등반 과정에서 우리는 랜턴을 끄고 밤하늘의 별을 봤다. 엄청난 굉음의 바람 소리를 들었다. 혹독한 추위 속 머리가 띵해질 정도의 혹한을 경험했다. 아이젠을 착용하고 빙판과 눈길을 같이 헤매기도 했다. 강풍 속에서 견딜 수 없는 통증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아이는 자신을 묶고 있던 현실의 문제, 즉 게임과 음란물 등 중독의 유혹을 잊게 됐다. 생각할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가 이걸 경험하면 교역자들이 그리스도께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진솔하게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리고 청소년은 자연스럽게 주님께서 원치 않는 것을 끊을 결심을 한다. 지금도 그 아이는 하루 한 시간 기도와 성경 말씀 읽기, 600쪽의 독서를 한다.

한 아이가 바뀌면 다른 아이도 바뀐다. 그 아이가 만나는 주변 사람도 자연스럽게 바뀐다. 그게 대표성의 법리다.

한국교회는 그동안 이 대표성의 법리를 잊고 있었다. 교회는 누가복음 14장 말씀처럼 많은 사람을 교회로 채우는 데 힘썼다. 그러나 그 일을 위해 주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했던 사람, 종 하나를 키우는 데는 등한시했다. 지금은 그 종을 키울 때다.

이강우 목사(좋은나무교회)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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