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힙합을 아느냐’… 1세대 래퍼 재조명 되길

엠넷 예능 프로그램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 홈페이지에 걸린 이미지. 1세대 래퍼들이 대거 출연하는 이 프로그램은 한국 힙합의 역사를 되새기게 해준다.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 홈페이지 캡처





1999년 도발적인 제목의 노래가 나왔다.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란다. 제목만큼 가사도 기세등등했다. 음악 같지 않은 음악들은 다 집어치워야 한다면서 본인들이 진정한 힙합을 한다고 외쳤다. 아무런 근거 없이 거들먹거리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빠르고 역동적인 플로(flow) 등 실력이 남달랐다. 우리 대중음악계에 힙합이 본격적으로 번성하던 때 드렁큰 타이거의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는 힙합 마니아의 찬가로 자리매김했다.

이제 그 노래는 예능의 제목이 됐다. 더불어 대선배들이 건재함을 주장하는 표어이기도 하다. 지난달 28일 첫 방송된 엠넷의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에는 원썬, 주석, 허니 패밀리, 45RPM 등 이른바 1세대로 통하거나 데뷔한 지 15년 이상 된 중견 래퍼 12명이 출연한다. 프로그램은 한국 힙합이 창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컴필레이션 앨범 ‘1999 대한민국’에 착안해 출연자들과 함께 ‘2020 대한민국’ 음반을 제작하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

기획이 좋다. 음반 제작은 차치하더라도 선진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는 점은 충분히 값지다. 힙합이 인기 장르로 정착한 덕에 한 해에도 많은 힙합 페스티벌이 열리지만 1세대 뮤지션을 초대하는 곳은 거의 없다. 출연자 중 더블케이, 배치기, 인피닛플로우, 주석 같은 이들은 최근까지도 성실하게 신작을 출시했으나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했다. 젊은 음악팬들은 동시대의 지명도 높은 래퍼들의 음악을 찾아 듣기에도 바쁘다. 주석은 제작진과의 사전 인터뷰에서 자신의 노래를 듣는 사람, 공연을 보는 사람이 현저히 줄어들었음을 넌지시 밝히며 다른 직업을 구할 생각도 했다고 털어놨다. 이런 상황에서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는 한국 힙합의 성장을 이끈 인물들을 알리고 재조명하는 기능을 할 듯하다.

프로그램은 젊은 세대가 ‘고전’을 쉽게 접하는 통로도 된다. 제작진은 참가자들의 나이를 고려해 꽤 오래전에 발매된 노래들을 배경음악으로 깔았다. 비스티 보이즈 ‘체-체크 잇 아웃’, 워렌 지 ‘레귤레이트’, 라킴 ‘웬 아이 비 온 더 마이크’ 등 힙합 명곡이 여럿 등장했다. 이 기조의 선곡이 이어진다면 힙합 애호가들이 음악을 폭넓게 듣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과거의 음악을 소개하는 일에 주력하지만 제작진은 그것만으로는 시청자의 이목을 끌기엔 어렵다고 판단한 듯하다. 젊은 래퍼와의 합동 공연이 예고됐고, 협연의 첫 주자는 인기 걸그룹 멤버인 소연이었다. 이 섭외는 제작진이 핵심 출연자가 아닌 객(客)에게 시청률을 의존하고 있음을 일러 준다. 호화로운 게스트의 투입은 보는 재미를 담보한다.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아야 하는 제작진으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주연 래퍼들에게 집중할 수 있는 무대를 장만할 때 프로그램의 취지 또한 광채를 낼 수 있다.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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