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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최근 첫 회의를 열고 활동을 시작했다. 준법감시위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뇌물사건 파기환송심 재판부의 권고로 만들어졌다. 이 부회장은 1심 실형 선고 뒤 항소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아 석방됐지만 대법원은 2심의 36억원보다 많은 86억원을 뇌물·횡령액으로 판단했다. 현행법상 50억원 이상 횡령은 최소 징역 5년이다. 집행유예는 3년 이하 징역형에 대해 가능하다. 재판부가 형량의 절반까지 직권으로 깎을 수 있는 ‘작량감경’을 하지 않으면 이 부회장은 재수감된다.

여기서 찬반 양론이 생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의 응보적 사법이냐, 반성하고 변화할 기회를 주는 회복적 사법이냐의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응징이냐 용서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준법감시위가 이 부회장 감형을 위한 이벤트에 불과하다는 시각과 준법경영을 위한 실질적인 기능을 할 것이란 견해도 맞선다. 이런 상황에서 결국 재판장의 판단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판단에는 법률적 지식은 물론이고 세상과 삶에 대한 철학과 가치관이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재판장인 서울고법 형사1부 정준영 부장판사는 소송보다는 당사자 간 원만한 합의를 통해 분쟁을 근본적으로 종식시키는 대안적 분쟁해결(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을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처음으로 민사조정에 미국식 배심재판을 도입했고, 형사재판에서 피고인과 피해자 간 화해를 중재하기도 했다. 치매에 걸린 남편이 아내를 살해한 사건에서 치료를 우선하게 하거나 자식들과 동반자살을 시도했다가 살아난 어머니에게 보석을 허가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그의 판결에는 치유와 화해, 회복의 가치가 관통하고 있다. 정 부장판사는 이 부회장에게 “폐해를 시정하고 혁신경제로 나아가는 데 기여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준법감시제도가 실질적이고 효과적으로 운영돼야 양형 조건으로 고려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재벌 봐주기라는 비난을 감수하고 응징과 용서 가운데 용서를 택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삼성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이 부회장의 회개와 다짐, 실천을 전제로.

신종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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