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배승민] 생각의 우물



강의나 회의 차 지방을 오가는 일이 잦아지면서, 막히는 도심보다도 오히려 빨리 오갈 수 있다는 사실에 제법 놀랐다. 체력이 부족해서 그렇지 제주도도 당일 강의 후 바로 올라와 저녁 일정을 이어가기도 한다. 이런 생활을 반복하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는, 사람이란 자신의 경험에 갇혀 산다는 사실이다. 고속열차에 몸을 싣고 빠르고 편리하게 이동하면서, 학생시절 우리들보다 먼저 운전면허를 딴 한 친구가 으스대듯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운전을 하니 거리의 개념이 바뀐다나. 당시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했으나, 나 역시 운전을 시작하고 보니 그 뜻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엄두도 못 냈던 곳을 얼마든지 갈 수 있게 되니, 내 세상은 어느새 경계가 바뀌었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우리사회에서 여행이란 국내든 해외든 드물고 희귀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제는 여행이 일반화되면서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의 경계가 바뀌었다. 직업상 마주하게 되는 질병의 패턴 또한 정신없을 정도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보다 넓은 세상, 지식의 바다에 접근하는 것은 위험하고도 매혹적인 힘이 있다. 수백 년 전 산 하나를 넘는 데 목숨까지 걸어야 했던 선조들의 사고방식은 지금 우리의 그것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다만 생각은 노력 없이는 그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 인간의 뇌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대신 그만큼 경험의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물 밖을 모른다면 안에 머물러도 자신의 처지가 그리 안타깝지 않은 심리적 장점은 있겠으나, 잃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많은 것을 잃어갈 것이다. 경험의 한계를 넓히려는 시도를 멈추는 순간, 우리의 뇌는 어느새 게을러진다. 나 역시 잠깐 방심하면 멈춰버리곤 한다. 굳이 기발한 일을 시도하거나 멀리 여행을 가라는 뜻이 아니다. 평소와는 조금 다른 반찬이나 잘 안 보던 스타일의 책을 시도해 보는 것, 원래 다니던 길에서 살짝 벗어나 한 블록 더 가보는 것도 좋겠다. 우물 밖 하늘이 낯설고 두려울 수 있지만, 그만큼 두근거리는 새로운 풍경이 나타난다. 이러한 작은 모험들이 뇌를 깨운다. 우리의 뇌를 깨울 소박한 모험, 작지만 용감한 여행을 응원한다.

배승민 의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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