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의경] 감정휴지통



지난봄, 친구와 함께 서점에 갔다. 서점 한쪽에는 흥미로운 코너가 마련되어 있었다. 탁자 위에 커다란 휴지통이 놓여 있었는데 휴지통에는 ‘감정휴지통’이라고 적은 종이가 붙어 있었다. 감정휴지통이라는 글자 밑에는 작은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묵은 고민이나 버리고 싶은 감정을 종이에 담아 던져보세요.’ 감정휴지통 앞에는 볼펜과 종이가 놓여 있었다. 감정휴지통 주변에는 정리나 자존감에 관련된 책들이 놓여 있었다. 새삼 많은 사람들이 감정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모여들었다.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들, 중절모를 쓴 노신사, 아이와 동행한 엄마가 감정휴지통 앞에 놓인 종이에 글자를 적어 감정휴지통 안에 집어넣었다. 엄마를 따라온 아이도 글자를 적어 반으로 접은 후 엄마에게 전달했다. 엄마는 그것을 받아 감정휴지통에 넣었다. 묵은 고민이나 버리고 싶은 감정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구나 갖고 있는 모양이었다. 친구는 상사에 대한 불만을 적어 휴지통에 넣었고 나는 평소 스트레스를 받던 일을 적어 넣었다.

이런 것을 한다고 해서 고민이 사라질까 싶었지만 조금은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만으로도 고민은 해소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았다. 서점에서 나와 카페에 들어갔는데 음료를 주문하려는 손님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앞쪽에 선 남자가 누군가와 큰 소리로 전화 통화를 했다. 통화 상대와 싸우는 것 같았다. 그 남자는 전화를 끊은 뒤 씩씩대며 주문을 했다. 음료가 나오자 남자는 직원에게 큰 소리로 화를 냈다. 직원이 주문을 잘못 들은 모양이었다. 직원은 고개를 숙이며 죄송하다고 말한 뒤 다시 음료를 내왔지만 그는 마치 직원이 실수하기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더욱 심하게 화를 냈다. 그는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음료를 내버려둔 채로 카페 문을 세게 닫고 나갔다. 아직 앳되어 보이는 직원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하더니 끝내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낯선 남자의 감정휴지통이 된 그녀의 얼굴을 보는 내 감정도 한참 동안 오르락내리락했다.

김의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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