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배승민] 아이를 찾습니다



아이가 사라진 것은 순간이었다. 오랜만에 단 둘의 외출이라며 들뜬 아이는 평소 좋아하던 빵집에 가자고 했다. 빵을 고르고 계산하며 포장을 부탁하느라 등을 돌린 사이, 아이는 가게 안에 모기가 있으니 밖에 있겠다며 나갔다. 그 말에 당연히 두세 걸음 앞의 문밖에 있을 줄 알았던 내 실수였다. 처음에는 종일 집에 있다 나왔으니 주변을 구경하느라 잠시 시야에서 벗어난 것뿐이려니 했다. 1분 정도가 지나자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직업상 범죄 피해자와 사건들을 일상으로 대하건만, 막상 내게 일이 벌어지자 머릿속은 먹통이 된 컴퓨터 화면처럼 쓸모없어졌다.

그렇게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하는 골목 안팎을 십여 분 미친 듯이 헤매다 다시 빵집으로 향했다. 길이 엇갈린 아이가 혹시 오면 연락해 달라며 직원에게 번호를 남기는 내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그 소리에 주방 안에서 재료를 반죽하던 사장님이 앞치마를 훌쩍 벗으며 나와 아이 인상착의를 묻고는, 직원이 언뜻 봤다는 아이의 진행 방향으로 달려나갔다. 고맙다는 인사를 할 정신도 없이 나 또한 가게를 나와 한창 찾아다니는 중 휴대전화의 낯선 번호가 떴다. 울고 있는 아이가 있길래 대신 전화를 걸어주었다며 위치를 알려주는 침착한 목소리의 고마운 분께 나는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아이가 큰 병에 걸리거나 심각한 일을 겪은 부모들의 별거 및 이혼율은 급증한다. 위중한 사건에 직접 노출된 이들뿐 아니라 그 가족도 질병에 취약해져 원래의 건강 상태로 회복되는 데 몇 년 이상 걸린다는 연구들도 있다. 내가 맡고 있는 강력범죄피해치료센터에 오는 피해자와 가족들도 사건 자체보다는 취약해진 건강과 나빠진 가족 관계에 더 고통받기도 한다. 충격의 상처는 당장 겉으로는 안 보여도 끝없는 악몽처럼 되풀이되어 자국을 남긴다. 하지만 낯선 이의 어려움에 선뜻 나서준 빵집 사장님이나 지나가던 이의 작은 관심, 그 순간순간이 모여 끈질긴 악몽의 자국을 밀어낸다. 물론 그날의 일은 인생에 있어 사건이랄 것도 아닌 작은 해프닝일 뿐이지만, 우리가 받은 도움은 작지 않았다. 잠든 아이를 바라보며, 오늘 받은 온정을 언젠가 우리도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기를 중얼거려본다.

배승민 의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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