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의경] 성큼 다가온 가을



집 밖으로 나가면 가을이 왔음을 실감할 수 있는 때이다. 과일가게에는 탐스러운 과일이 저마다의 색을 뽐내며 진열되어 있고 하늘은 높고 푸르다. 내가 하늘을 자주 올려다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것도 매해 이맘때다. 그림처럼 펼쳐진 구름과 하늘의 모습에 감탄하며 카메라를 들어 올려 셔터를 눌러대는 사람들을 따라서 나도 하늘 사진을 찍었다. 8월의 마지막 날에는 탄천에 나갔다가 가을이 온 것을 더욱 완연히 느낄 수 있었다. 길가에는 코스모스가 피어 있었고 매미 소리가 크게 들렸다. 땅에는 밤송이가 떨어져 있었다. 나는 밤송이를 몇 개 주워 주머니에 넣고 앞으로 나아갔다. 연못에는 개구리밥이 가득했고 날개를 편 백로의 모습은 여유로웠다. 강아지에게 쫓긴 오리 떼는 갈대와 억새풀 사이로 날아올랐다. 이름 모를 작은 꽃들도 곳곳에 피어 있었다. 탄천의 자연에는 정리되지 않은 아름다움이 있었다. 꽃보다 잎이 아름답다는 가을, 나뭇잎이 형형색색의 단풍으로 물드는 본격적인 가을보다는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 지금 이때가 매해 기다려지는 이유는 그 시기가 매우 짧기 때문일 것이다.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이하는 시간은 사춘기처럼 푸릇하면서도 애틋하다.

이런 계절에는 벤치에 앉아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도 좋았다. 나는 벤치에 걸터앉아 밤송이를 만지작거리며 봄부터 계획했지만 진척을 보이지 않는 일에 대해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지금이라도 다시 시작할까 생각하니 한숨이 나왔다.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는 생각에 절망감이 밀려왔다. 주말마다 탄천에 나와 자전거 타기를 배우던 꼬마는 이제 엄마가 잡아주지 않아도 능숙하게 자전거를 타는데 나는 무얼 하고 있는 건가 싶었다. 그때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그 나무는 아래쪽에 난 잎들은 녹색이었지만 위쪽에 난 잎들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시간 맞춰 나오지 않았다면 보지 못했을, 여름과 가을 사이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는 나무의 모습이었다. 곧 가을장마가 시작된다고 하니 오늘 이 나무를 만난 것이 운명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어쩌면 진척을 보이지 않는 내 일도 아직 선명히 윤곽이 보이지 않을 뿐 영글어가는 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의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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