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배승민] 원시인의 불안과 우울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스마트폰 음악을 즐기며 과학의 결정체인 차에 타고 있는 당신의 뇌는 원시인의 수준이다. 온라인에 뇌 기능 일부를 아예 맡기다시피 하고 사는 현대인의 뇌는 과거와 달라지고 있다지만, 그것도 고위 기능 중 일부일 뿐. 머리의 깊숙한 곳, 변연계의 감정적인 뇌는 변화무쌍한 겉껍질과는 달리 묵직하게 자리한 대신, 한 번 자극받으면 활화산 터지듯 지각변동이 일어난다. 원시인이 동굴이나 무리에서 쫓겨나면 어떻게 될까. 인류는 구석기였건 현대사회에 살건 무리를 지어 산다. 사냥을 나가도 홀로보다는 무리 사냥을 하고, 사냥이나 전쟁이 끝나면 곧 더 큰 무리, 가족에게 돌아갔다. 무리에서 멀어지면 생존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해 뇌 속 시끄러운 알람을 울리며 불안이 폭발하고, 어떻게든 불편한 감정에서 벗어나고자 무리로 돌아가려 한다. 이렇게 장구한 세월 동안 변함없던 인류의 뇌, 그로 인해 큰 변함없이 유지되던 군집 형태가 지금, 갑작스러운 위기를 맞았다. 소외와 인터넷의 습격이 시작된 것이다.

은퇴 후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한 노년의 신사는 그 고통을 한 문장으로 전했다. “저는 이제 사회에서 버림받았어요.” 은둔형 외톨이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오는 부모의 고통도 이와 연결된다. 따돌림과 소외에 지친 연약한 어린 개체는 광활한 온라인 관계망에 몸을 담고 가족과 담을 쌓는다. 그러니 민감한 10대에게 온라인의 따돌림은 오프라인, 또는 그 이상의 심각한 충격과 우울증을 일으킨다. 온라인이 뭐길래 ‘좋아요’ 하나에 죽고 사는 아이들은, 실제 위협에 대비하여 살아온 기성세대에게 전혀 다른 종족 같기만 하다. 낯섦에 서로 손가락질을 하다 보면 갈등은 더 불거지고, 상대를 같이 욕하는 ‘내 무리’에 대한 결속과 의존성은 더욱 강해져 내 무리가 아니면 ‘적’으로 공격해도 괜찮다고 할 수위까지 간다.

과학과 가상현실이 점점 발전하는 미래는 어디로 갈까. 물리적 한계를 넘어 연결된 광대한 연대의 삶으로 나아갈까. 아니면 더욱더 협소한 내 ‘무리’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불안에 쫓겨 더욱 극단적으로 적을 찾아 공격하며 살아남으려 할까. 부디 각자 형태는 다를지언정 나름의 행복을 찾길 바란다.

배승민 의사·교수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