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문화라] 의심과 믿음



개학을 하루 앞둔 날, 아이에게 학교에 가져갈 방학 숙제를 챙기게 하였다. 자유 숙제 중 부족한 과목의 문제 풀기가 있었는데 공책에 숙제를 했다고 하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 않고 했다고 한 게 아닐까 싶어 빨리 공책을 찾아오라고 했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전에 몇 번 문제지를 풀지 않고도 물어보면 했다고 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숙제를 안 한 거 아니냐고 물었다. 아이는 끝까지 했다고 말했지만 공책은 없고 숙제는 내일 가져가야 했기에 다른 곳에 밤늦게까지 문제 풀이를 하게 시켰다. 개학을 앞둔 소동은 그렇게 끝났고, 거짓말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아이에 대한 의심은 그런대로 합리적으로 보였다. 며칠 후 청소를 하다 우연히 침대 밑에서 공책을 찾았다. 펼쳐보니 빼곡하게 문제 풀이가 되어 있었다. 보는 순간 아이를 믿지 못하고 거짓말을 한 거라고 의심부터 했던 걸 후회했다. 아이의 말을 왜 믿지 못했을까 생각해보았다. 가끔 아이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주어야 하는가에 대해 물어보시는 분들을 만난다. 나 역시 고민을 해보았던 문제이다. 물론 눈에 보이는 빤한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 아이를 믿어주는 일은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에 아이를 믿어줄 수 있을까. 아이의 잘잘못을 따지는 일보다 믿음을 유지하는 일은 훨씬 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믿어줄 거라는 신뢰가 사라진 다음에 내면의 이야기를 부모와 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토머스 쿡의 ‘붉은 낙엽’은 부모가 자식을 의심하게 되면서 가족 간의 관계가 어떻게 망가지는지 잘 보여주는 소설이다. “의심은 아래로 내려갈 수밖에 없고 오랜 신뢰와 헌신의 수준을 차례차례 부식시킨다”는 말처럼 가족 간의 믿음이 깨지게 되면 신뢰는 사라지게 된다. 신뢰하는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서로를 연결해주는 강한 힘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아이를 믿지 못하고 의심을 하게 되었던 것일까. 아마도 아이의 행동이 내 기대에 못 미쳤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아이가 내 기대치에 부응해주길 바라기 이전에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격려해주고 있는지 나부터 고민해볼 문제이다.

문화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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