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문화라] 가족여행의 추억



연휴 기간에 부모님을 뵈러 친정에 다녀왔다. 아버지는 지난해 겨울부터 병환으로 병원에 누워계신다. 기력이 없으셔서 말씀은 잘 안 하시지만 말은 전부 알아들으시기 때문에 나는 병원에 가면 여러 이야기를 해드린다. 별일 없이 자라고 있는 아이들 소식도 전해드리고, 어릴 적 일들도 이야기한다. 그러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 일이 있으면 질문도 드려본다. 아버지는 한 단어 이상은 말씀하시기 힘들어하시지만 그때 일들을 떠올리시면서 답변을 해주신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부모님과 같이 갔던 제주도 여행이 생각났다. 어렸을 때 갔던 가족 나들이에 대한 기억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해수욕장에 갔던 일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날도 차멀미를 심하게 했던 일 말고는 기억나는 게 없다.

그 후 아버지가 칠순 생신을 맞이하게 되었다. 가족 전체가 함께 여행을 가본 적이 없으니 이번에 다 같이 여행을 가보면 어떨까 의견을 모았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3박4일의 제주도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부모님을 포함하여 돌도 안 된 막내 조카까지 모두 열다섯 명이 함께 떠난 여행이었다. 11월이었는데 그때의 제주도 날씨는 봄날처럼 따뜻했다. 겉옷을 입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화창하고 포근한 날씨였다. 두 번째 날 일출봉에 올랐다. 안고 다녀야 하는 조카도 있으니 오르기 쉬운 곳을 선택한 것이다. 커다란 사발 모양의 분화구 위로 바위 봉우리가 둘러서 있었다. 정상까지 오르는 데는 30분도 걸리지 않는 가벼운 산행이었다. 바다와 산이 어우러져 툭 틔어진 길이라 풍광이 무척 좋았다. 정상에 올라서 온 가족이 함께 바다를 뒤로 하고 사진을 찍었다. 아버지께 그날 여행이 기억나시는지 여쭤보았다. 아버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집으로 돌아와서 그날 일출봉에서 찍었던 사진을 오랜만에 찾아보았다. 사진 속의 부모님은 정정하셨고, 가족들의 표정은 밝았다. 햇살이 무척이나 따뜻해 보이는 가을 오후였다. 사진 한 장에도 소중한 가족의 역사가 담겨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지나버린 세월을 안타까워하기보다는 앞으로도 기억나는 추억들을 길어 올려 이야기를 해드리자고 다짐해본다.

문화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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