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의경] 반나절의 말동무



지난여름, 나는 엄마가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엄마는 당시 아파트 단지 내 헬스장에서 청소부로 일하고 있었다. 일하다가 앞으로 살짝 넘어졌을 뿐인데 허리골절이라니. 뼈가 약해진 상태였던 모양이다.

8인용 병실에 들어서자 한쪽 구석에 놓인 침대에 누워 있는 엄마가 고개만 든 채로 나를 불렀다. “엄마 여기 있어!” 엄마는 허리에 복대를 두르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얼굴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하지만 낙천적인 사람도 병 앞에서는 별 수 없는 모양이었다. 함께 있는 시간이 세 시간을 넘어가자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너는 놀러 왔어? 거기 좀 잘 잡아봐. 아야! 그렇게 세게 잡으면 안 되지.” 겨우 반나절을 간병했을 뿐인데 진이 다 빠졌다. “너도 운동 좀 해. 몸과 마음은 연결돼 있어. 운동하는 건 몸을 단련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마음을 달래는 거야.” 그렇게 말하는 엄마가 열심히 운동하는 것은 보지 못했다. 엄마는 늘 일을 해야 했고 운동할 시간이 없었다. 나는 이제 내가 용돈을 줄 테니 일을 그만두라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퇴원하면 바로 일을 시작할 거라고 했다. 또 청소 일을 할 거냐고 묻자 엄마가 말했다. “아니, 몸을 쓰는 일은 아닌데….”

엄마는 내가 집에 갈 때쯤, 하려다 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거기서 일할 때 운동하러 온 분 중에 알고 지내는 분이 있었거든. 나보다 열 살 많은 언니야. 넓은 집에서 혼자 사는데 우울증이 좀 있어. 엊그제 그 여사님이 전화해서 그러더라. 앞으로 못 보는 거냐고. 1주일에 두 번, 하루에 서너 시간만 자기 집에 와서 말동무 해주면 안 되겠냐고. 자기 아들이 돈 입금해줄 거라고.” 반나절의 말동무라니. 사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엄마는 입담이 좋았고 상대의 기분을 좋아지게 하는 재주도 갖고 있었다.

엄마가 퇴원한 후 말동무 아르바이트를 언제부터 할 거냐고 묻자 엄마는 그냥 안 하기로 했다고 했다. 돈을 받으면 돈값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예전처럼 정답게 대하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문득 그 팔순의 노인이 우리 엄마를 잠시 쉬게 해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웃고 있지만 역시 몸과 마음이 고단한 나의 어머니를.

김의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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