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문화라] 추억의 의미



봄맞이 청소를 하느라 집안의 묵은 짐들을 정리하기로 하였다. 베란다를 치우다가 낡은 종이상자를 발견하였다. 편지를 모아두었던 상자인데 오랫동안 꺼내보지 않아 먼지가 쌓여 있었다. 상자 속에는 20대 때 친하게 지낸 외국 친구와 주고받았던 편지도 있었다. 편지를 읽자 자연스럽게 그때의 일이 떠올랐다. 당시 외국인 기숙사에 살았는데 옆방에는 교환학생으로 와 있던 일본인 여학생이 있었다. 처음 몇 번 마주쳤을 때는 짧은 머리에 무뚝뚝해 보이는 그녀의 첫인상 때문에 선뜻 말을 걸기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비슷한 음악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발견하였다. 그녀는 한국 대중음악에 심취해 있었다. 서로 음악적 취향이 비슷했던 우리는 급속도로 친해졌다. 그 뒤로 함께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를 보러 가기도 하였고, 틈만 나면 책이나 영화, 서로의 진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 년 후 그녀는 일본으로 다시 돌아갔다. 돌아간 후에도 일주일에 한두 통씩의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녀와 연락이 끊기게 된 것은 몇 년이 지나 결혼을 앞둔 몇 달 전이었다. 그 후 다시 편지를 보내야지 생각했지만 바쁜 일상에 쫓기면서 시기를 놓쳐 버렸다.

함께한 추억이 많았던 만큼 관계의 후유증은 오래 남아 있었다. 처음에는 끝나버린 인연의 끈을 다시 연결할 수는 없는 걸까 안타까워했다. 내게 무슨 문제가 있어서 관계가 끝나버린 것은 아닌지 자책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문득 지나간 관계를 되돌리는 일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한 기억들은 내게 소중한 추억이 되어 주기도 한다. 지나간 추억으로서도 충분히 의미가 있으니 자책감을 가지기보다는 현재 맺고 있는 관계에 최선을 다하고 집중하는 일이 의미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추억이란 무엇일까. 우리의 삶에서 즐거웠던 경험들이나 잊지 못할 순간들이 쌓이다 보면 그것은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저장된다. 어떤 기억은 녹슬고 먼지 쌓인 채 두 번 다시 열어보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기억은 힘들 때 나를 일으켜줄 수 있는 힘이 되어 주기도 한다. 소중한 기억들은 추억이 되고, 추억은 삶의 조각들을 채워 나간다.

문화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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