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스포츠] 프로서 단 10경기 뛴 무명, 성실함·소통으로 최고봉 우뚝

안덕수 청주 KB스타즈 감독이 9일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본점 1층에 전시된 여자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우승 트로피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농구계에서 철저히 무명이었던 안 감독은 성실함과 적극적인 소통으로 올 시즌 팀에 사상 첫 통합우승을 안겨주며 1인자로 우뚝 섰다. 윤성호 기자
 
안덕수 감독이 지난달 25일 경기도 용인실내체육관에서 가진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을 확정지은 뒤 골대 그물을 자르며 오른속 검지를 펴 보이고 있다. 뉴시스


여자프로농구 청주 KB스타즈 안덕수(45) 감독은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한국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일본으로 고교시절부터 유학을 떠났고, 프로 생활도 거의 하지 못했다. 대학농구연맹에서 오랫동안 일을 했고, 일본 여자 실업팀 코치를 했다. 3년 전 감독에 선임됐을 때 주변에서 “안덕수가 누구야”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한국 농구계의 ‘흙수저’란 말이 틀리지 않는다. 그런데 올 시즌 여자프로농구에서 창단 첫 통합우승을 일궜다. 박지수라는 슈퍼스타가 있지만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듯이 그의 지도력이 빛을 발했다. 그런 안 감독을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본점에서 만났다.

안 감독은 경기도 수원 삼일중을 졸업하고 곧바로 일본 오사카 하츠시바 고교로 농구 유학을 떠났다. 당시 이 학교 코치가 삼일중 소속으로 나고야에서 열린 한·일 친선대회에 참가한 그를 눈여겨본 뒤 안 감독의 아버지를 설득했다고 한다. 아무 연고도 없이 혈혈단신으로 일본에 갔는데 너무 힘들어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고 했다. 안 감독은 “외국인이라고 차별도 심했다. 그리고 일본은 한국과 달리 모든 수업을 듣고 야간에 운동을 했다”고 회고했다. 이후 자연스럽게 규슈산업대에 진학했고 대학 졸업 후 1997년 프로농구 수원 삼성(현 서울 삼성)에 입단했다.

하지만 프로에서의 활약은 미미했다. 문경은 김승기 주희정 등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있는 삼성에서 안 감독의 자리는 없었다. 그리고 어깨부상으로 2000년에 은퇴했다. 세 시즌 동안 단 10경기 출전에 그쳤다.

20대 후반의 나이에 은퇴를 하자 살길이 막막했다고 한다. 그런데 다행히 당시 정봉섭 한국대학농구연맹 회장이 그에게 연맹 사무국장 자리를 맡겼다. 일자리는 얻었지만 농구 행정은 정말로 낯설었다. 특히 안 감독은 지독한 생활고에 시달렸다고 했다. 그래도 프로 때는 연봉이 5000만원이었는데 사무국장을 맡고 처음 받아든 월급이 130만원이었다. 그래서 결혼도 1년 미뤘다. 안 감독은 “처음 은퇴하고 전 재산을 털어보니 4000만원이었다. 그래서 1년 더 돈을 벌고 대출을 받아 결혼해 6000만원짜리 빌라에 전세로 들어갔다”고 전했다.

안 감독은 모든 난관을 성실함으로 극복했다. 그는 “처음엔 경기 대진표 짜는 것조차 몰랐다. 컴퓨터도 할 줄 몰랐다”고 토로했다. 그래도 열심히 배워 나중에는 서류작성, 보도자료 등을 능숙하게 만들었단다. 안 감독은 “오전에 출근해서 연맹 행정일을 처리한 뒤 밤에는 스폰서를 만나 광고를 구하는데 매달렸다”며 “퇴근 시간이 따로 없었다”고 전했다. 이후 안 감독은 2007년 연이 닿아 일본 여자 실업팀 샹송화장품 코치로 지냈다. 그리고 3년 전 KB스타즈 사령탑에 선임됐다.

안 감독에게 국내에 아무 연고도 없는데 어떻게 프로에 뽑혔고, 대학농구연맹 사무국장, 그리고 여자프로농구팀 사령탑까지 됐냐고 물어봤다. 돌아온 대답은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다”였다. “왜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그렇게 잘 본 것인가”라고 물으니 “잘 모르겠다”며 쑥스러워 했다. 그래서 연맹 시절 전무로 일했던 박건연 해설위원에게 물어봤다. 박 위원은 “안 감독은 성실하고 우직했다”고 소개했다. 고지식한 일본사회를 경험해서 그런지 시간 약속에 철저하고 맡은 일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해내는 스타일이었다는 것이다. KB 감독 선임 때도 마찬가지였단다. KB는 샹송화장품과 자매결연을 맺은 상태다. 그래서 매년 일본 전지훈련에서 연습경기를 했고, 자연스럽게 KB 관계자들과 안 감독은 자주 만났다. 안 감독은 상대 선수들의 식단까지 챙길 정도로 꼼꼼하게 일을 처리했다. KB 프런트는 성실하고 선수들과 허물없이 지내는 안 감독을 눈여겨본 뒤 그를 사령탑에 선임했다.

안 감독은 겉으로 보기엔 ‘상남자’ 스타일이다. 강한 인상 때문에 처음 만난 사람들은 어떻게 보면 무섭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선수들과 격의 없는 소통을 즐긴다. 실제 한 번은 팀의 가드 심성영이 경기에서 자신에게 맞는 패턴을 준비해 달라고 했더랜다. 안 감독은 이를 허투루 받아들이지 않고 밤새 연구해 다음 날 아침 심성영을 불러 “이렇게 하면 마음에 드냐”고 했다. 사제지간으로 엄격한 한국 농구에선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결국 오늘의 안 감독을 만든 것은 성실함과 적극적인 소통이었다. 그에게 현재 어려운 상황에 있는 젊은이들에게 한 마디 해 달라고 했다. 그의 답은 이랬다. “좌절하지 마라.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라. 그리고 힘든 일은 피하지 말고 부딪쳐라.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한다면 길은 뚫린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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