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황시운] 버티는 사람들



많은 작가가 어려서부터 독서광이었던 것과 달리 나는 책 읽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어쩌다 보니 평생 읽고 써야 하는 직업을 갖게 되었지만, 이후에도 내게 독서는 어렵고 재미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사고 이후 만성적인 신경병증성 통증에 시달리게 되면서 집중력은 완전히 무너졌고 난독 증상까지 나타났다. 읽을 수 없게 되자 쓰는 일마저 고통스러워졌다. 어떻게 해도 나아질 것 같지 않았다. 도망치고만 싶었다. 포기를 합리화해줄 핑곗거리가 필요했다. 그러나 아무리 궁리해봐도 걸리는 게 없었다. 아무도 내게 읽고 쓰라고 강요한 적이 없었다. 애초부터 재능이 있다고 믿을 만한 어떤 근거도 없이 소설가가 되기로 한 것은 순전히 내 의지였다.

대책 없이 흔들리던 내가 다시 중심을 잡을 수 있었던 덴 엄마의 특별한 조언 덕이 컸다. 그즈음 나는 뼈가 뻐개지고 살이 타들어가는 듯한 통증에 고통스러워하며 매일 울고만 있었다. 그런 내게 엄마가 말했다. “모르긴 해도 오늘이 네 남은 인생에서 가장 덜 아픈 날일 텐데, 계속 이렇게 시간만 보낼 거야? 그러다 나중에 얼마나 후회를 하려고….” 처음엔 그 말이 가슴에 얼음처럼 박혀 서럽고 아프기만 했다. 그런데 생각하면 할수록 엄마의 말이 모두 맞았다. 내 남은 인생에서 오늘이 가장 덜 아픈 날인 것도 맞았고 그런 오늘을 이렇게 흘려보내다간 결국 가슴을 치며 후회하게 될 거라는 것도 맞았다. 그걸 인정하고 나자 가슴에 박혀 있던 말에 온기가 돌며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습관처럼 다짐했다. 그만두는 건 내일 해도 되니까 어떻게든 오늘만 버텨보자고. 내일 어떻게 되든 오늘을 버텨서 손해 볼 건 없다고. 다시 무너지는 순간도 있었지만 다짐을 반복하는 사이 절망을 반동으로 이용해 일어설 줄도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고통스러운 현실을 견디게 해주는 건 거대한 희망이나 뚜렷한 명분이 아닐지도 모른다. 세상엔 그저 오늘 하루만 더 버텨보자는 안간힘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얼마든지 있다. 삶이 끝내 아무런 보상도 해주지 않으리라는 걸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그들의 버티는 삶이 세상을 떠받치고 있다는 걸 이제는 알 것도 같다.

황시운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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