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황시운] 헤어지는 중입니다



지난 토요일, 오래 아프던 이가 끝내 세상을 등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렇게 떠나기엔 너무 젊은 사람이었다. 비보를 접하는 순간 허방을 짚은 것처럼 마음이 풀썩 내려앉았다. 그리고 며칠간, 깊은 우울감에서 헤어날 수가 없었다. 사실 그는 이미 한참 전부터 위중한 상태였다. 그런데도 나는 그가 아주 오랫동안 모두의 곁에 있어 줄 거라 믿었던 것 같다. 매일 아침 그가 SNS에 올린 글을 일부러 찾아보며 그의 안녕을 확인했지만, 그가 이렇게 빨리 떠날 거란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그는 엄청난 고통 속에서도 누구보다 뜨겁게 삶을 예찬하던 사람이었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꼭 한 번은 그를 직접 만나 그에게서 받은 선한 영감에 고마움을 표하고 싶었다. 그럴 기회가 없었던 것도 아닌데, 불편한 몸을 핑계 삼아 차일피일 미루는 사이 영영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처음 겪는 이별이 아닌데도 마치 처음인 양 서툴고 어리석었다.

어린 시절엔 서른 살쯤 되면 내 삶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밀고 나갈 수 있을 거라 여겼다. 불혹이면 어지간한 갈등은 담담히 풀어낼 줄 알았고, 지천명엔 하늘의 뜻까진 몰라도 세상 돌아가는 이치 정도는 꿰뚫어 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심지어, 이순을 넘기면 잠자코 늙어가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이 나이가 되도록 외줄 위의 광대처럼 불안을 껴안은 채 살아가게 될 줄은 몰랐다. 어떻게든 버티다 보면 삶이 조금쯤 쉬워지는 순간도 오지 않을까. 벽에 부딪힐 때마다 자문해보지만 매번 고개를 내젓고 만다. 끝까지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다 마지막 숨을 놓게 되는 건 아닐지 걱정스럽다면 지나친 비관일까.

사람이 사는 동안 모두 몇 번의 이별을 경험하고 그중 어떤 이별 앞에서 주저앉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내 삶은 여전히 미궁 속에서 헤매고 있지만, 끝없이 반복되는 이별이 관계의 역사라는 점만은 알 것도 같다. 그러고 보면 늙어간다는 것은 반복되는 이별에 익숙해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부모와 헤어지고, 친구들과 헤어지고, 형제와 헤어지다 보면 결국 맨 마지막 이별을 눈앞에 두게 될 테니까. 끊임없이 흔들리며 맞이한 그 순간이 걱정만큼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황시운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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