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하주원] 다시, 미안하다



20년 전 잠시 아르바이트를 할 때, 나와 손님이 둘 다 제대로 앞을 보지 않아서 손님이 음식을 내 옷에 쏟은 적이 있었다. 어쨌든 둘이 부딪혔고 나도 주의했으면 그런 일이 없었을 것 같아 죄송하다고 말했다. 무릎을 꿇고 사죄한 것도 아니고 가볍게 죄송하다고 했을 뿐인데, 도리어 사장님께 굉장히 혼났다. 나 혼자 잘못한 상황도 아닌데 그렇게 쉽게 사과하면 어떡하냐고 화를 내셨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미안하다는 말을 쉽게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은 자영업자의 상식과도 같았다. 고객이 불만을 제기했을 때 죄송하다는 말 빼고 모든 말은 다 해도 된다. 왜냐하면 책임을 다 뒤집어쓰고 과도한 보상 요구에 책임을 지는 상황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상담이나 주변의 사례를 보면 그 말이 완전히 틀렸다고 보기도 어렵다. 미안하다는 것을 마치 잘못을 인정하는 것처럼 몰아붙여 악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세상 갈등과 사고가 단지 한쪽만의 문제로 일어나는 경우는 극히 드문데도 말이다.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은 순간에도 그 말을 쉽게 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나이가 더 들면 그 순간이 더욱 아쉽게 느껴질 것 같다. 그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순간을 만나고 싶다. 사전적 의미에서도 미안하다는 말은 남에 대해 마음이 편치 못하고 부끄럽다는 단순한 뜻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안타까운 일에 대한 원인을 내가 제공했기 때문에 미안할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니다. 크게 잘못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양해를 구할 수 있다. 죄송하다, 송구하다 모두 원인에 대한 책임을 포함하는 단어가 아니다. 하지만 내가 뒤에서 바로 앞차를 박았을 때처럼 나의 과실이 확실한 상황에서는 쉽게 사과하지만, 추월하다가 서로 부딪힌 경우 섣불리 사과하지 못한다. 그저 상대방이 놀랐을 테고 다쳤을 가능성에 대한 편치 않은 마음, 내 잘못이 20%라도 그것이 죄스럽다는 마음을 표현하면 안 되는 것일까. 미안하다는 말을 한마디 한다고 해서 이미 용서 받았던 책임까지 지라는 것도 아닌데, 다시 사형선고를 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편하지 않고 부끄럽다는 단순한 감정을 표현하는 그 말 한마디를 하지 않는 사람의 심정이 혹시 이런 것일까 해서 고민해보았다.

하주원 의사·작가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