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황시운] 특별하지 않은 삶은 없다



“고모는 어렸을 때부터 소설가가 되고 싶었어요?” 올해 열 살, 아홉 살이 된 연년생 조카들이 물었다. 지난 주말 저녁, 함께 뒹굴며 이야기꽃을 피우던 중이었다. 내가 먼저 아이들에게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고 물었는데, 아이들은 그걸 ‘어떤 직업을 갖고 싶냐’는 질문으로 이해한 모양이었다. “아니, 그렇진 않았어.” “그럼 뭐가 되고 싶었는데요?” 아이들이 새까만 눈동자를 빛내며 물었다. “글쎄….” 한참을 머뭇거렸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사실 나는 되고 싶은 것이 없는 아이였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희망하고 권유하는 직업이 있었지만 그건 내 선택이 아니었다. 나는 오로지 특별한 삶을 살아가고 싶었을 뿐이다. “할머니가 진학상담 때문에 고모 학교에 갔을 때 고모가 뭐라고 했는지 아니? 뭐가 되든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갈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큰소릴 쳤어.”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고 있던 엄마가 대뜸 말했다. “진학상담이 뭐예요?” 큰조카가 되물었지만, 엄마는 말없이 웃기만 했다. 창피함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는 구체적인 진로를 결정해야 할 나이가 되었을 때까지도 특별한 삶에 대한 치기 어린 바람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평범하게 살 바에야 죽어버리는 편이 낫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돌이켜보면 지나치게 허황한 생각이었다.

그때로부터 이십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나는 모든 면에서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가고 있다. 어린 시절 내가 꿈꾸던 특별한 삶 속에 장애나 통증, 고립감 같은 것은 없었지만, 일반적으로 말하는 평범함에서 한참 벗어난 삶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내 삶은 바라던 만큼 특별해졌나? 여기가 그토록 원하던 가장 높은 곳인가?’ 아이들이 모두 잠든 밤, 컴컴한 천장을 올려다보며 곰곰 생각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세상에 특별하지 않은 삶이 어디 있을까. 누구에게나 삶은 딱 한 번뿐이고 삶의 건너편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데.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다면, 나는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모를 일이다. 누구도 두 번 살 수 없는데, 그걸 어떻게 알겠는가.

황시운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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