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황시운] 그날, 그곳, 그 사람들



고교 시절 내 관심사는 오로지 ‘나’였다. 그때 나는 내 존재의 보잘것없는 일면들을 들춰보며 매일 좌절했다. 그리고 누추하고 나약한 내면을 숨기려고 일부러 가시를 세운 채 사소한 반항을 일삼았다. 생전 안 그러던 애가 어깃장을 부리기 시작하자 부모님은 당황했다. 얌전한 모범생들의 순종에 익숙해 있던 교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자꾸만 학교 밖을 서성였다. 머릿속이 뜨거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어느 순간 내 머리가 펑 터지거나 활활 타버릴 것만 같아 불안할 지경이었다. 나는 그렇게, 단 한순간도 나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채 성인이 되었다. 마흔다섯의 나라고 그때와 뭐가 다를까. 나는 지금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지만,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한 실천에는 여전히 게으르다. 입바른 소리 몇 마디 툭툭 뱉어낸다고 세상이 바뀔 리 없는데도 그 이상을 해볼 엄두는 나지 않는다.

정부가 유관순 열사에게 건국훈장 1등급인 ‘대한민국장’을 추서하기로 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유관순 열사에 대한 영화도 개봉하는 모양이고 3·1운동 기념우표도 발행한다고 한다. 꼭 100주년이 되는 해이니 그럴 만도 하다. 서훈 등급 격상에 대해선 다른 시각도 존재했다. 여러 의견을 하나씩 따라 읽어가다 보니 100년 전 그날 그곳이 손에 잡힐 듯 생생히 펼쳐졌다. 신념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버릴 수 있는 사람들, 가난하고 배우지 못했어도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분명히 아는 사람들, 극한의 고통을 견디며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 우리가 기억하는 사람들, 미처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 어쩌면 누군가에 의해 고의로 흔적이 지워진 사람들까지, 그날 그곳은 그런 이들로 가득했다. 3·1운동에 참여한 뒤 고향으로 내려가 4·1만세운동을 조직하고 이끈 유관순 열사의 나이는 겨우 열일곱이었다.

열일곱의 나는 내 한 몸도 제대로 품지 못해 매 순간 흔들렸는데, 그는 그 나이에 온몸을 던져 망가진 세상을 품에 안은 것이다. 두렵지 않았을 리 없다. 아프지 않았을 리도 없다. 그런데도 그 모든 걸 견디게 한 힘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범인에 불과한 나는 여전히 그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황시운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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