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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태원준] 짐 로저스의 베팅



짐 로저스(77)는 2010년 잡지 ‘내셔널 리뷰’와 인터뷰하며 기자에게 “한국으로 이주하라”고 조언했다. 한국에 가서 통일을 기다리며 한국 여성과 결혼해 농사를 짓고 자녀가 태어나면 중국어도 가르치라고 했다.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와 함께 세계 3대 투자가로 꼽히는 이 금융인은 그것이 부자가 되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기자는 “그의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나도 고민 중”이라고 썼다. 이주, 결혼, 농업, 중국어의 네 가지 조언 중 둘은 로저스가 직접 했던 것이다.

뉴욕 맨해튼에서 살던 그는 2007년 싱가포르로 이주하며 이렇게 말했다. “1807년 현명한 사람은 런던에 갔고, 1907년 현명한 사람은 뉴욕에 갔다. 2007년 당신이 현명하다면 아시아로 가야 한다.” 그가 말한 아시아는 중국이었는데 상하이가 아닌 싱가포르에 정착한 건 미세먼지 탓이었다. 중국에 가고 싶었지만 가족의 건강을 생각해 중국과 가깝고 쾌적한 싱가포르를 택했다. 그의 늦둥이 두 딸은 모두 중국어에 능통하다. 인터뷰 당시 여섯 살이던 큰딸의 중국어 실력을 한참 자랑했다. 결혼은 세 번이나 한 터라 또 하기 어려웠을 테고, 농부가 되는 것도 직접 하진 못했지만 젊은이들에게 줄기차게 조언했다. 2010년 모교인 옥스퍼드대학 강연에서 “월스트리트는 잊어라. 금융에서 실물로 경제적 힘의 이동이 이미 시작됐다. MBA보다 농업 학위가 더 값진 세상, 농부가 람보르기니를 타고 주식중개인은 그 밑에서 트랙터를 모는 세상이 온다”고 말했다.

로저스의 삶을 둘로 나눈다면 분기점은 두 차례 세계일주일 테다. 월스트리트에서 퀀텀펀드를 만들어 4200% 수익률을 기록한 그는 마흔도 안 돼 은퇴를 선언했다. 1990년대에 오토바이로 52개국, 개조한 벤츠로 119개국을 여행했다. 그러곤 아시아 시대를 예상해 이주까지 했는데, 아시아라고 다 후한 평가를 내린 건 아니었다. 2015년 “희망만 갖고 투자할 순 없다”며 인도 투자금을 모두 회수했다. 지난주 일본 언론 인터뷰에선 “일본 주식을 작년 가을 다 팔았다”고 밝혔다. 인도는 부진한 개혁, 일본은 인구감소를 이유로 들었다. “북한에 전 재산을 투자하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기 시작한 건 인도에 실망할 무렵부터였다. 인도에 이어 일본에서도 자금을 빼냈으니 총알은 충분할 텐데, 북한 투자의 실현 가능성을 말해줄 하노이회담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베팅을 앞둔 도박사처럼 노련한 투자가의 손이 좀 근질근질할 것 같다.

태원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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