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황시운] 칼이 되는 말



누구나 간혹, 순간적으로 치솟는 화를 참지 못해 입에 담지 못할 모진 말을 뱉기도 한다. 그 자리에 없는 사람 얘기를 하다가 본의 아니게 남의 험담이나 전하는 채신머리없는 사람이 되는 수도 있다. 말이 칼이 되는 경우는 우리 주변에서 생각보다 흔하게 일어난다. 나쁜 의도가 없었더라도 일단 벌어진 일은 수습해야겠지만, 이런 종류의 실수는 대개 가까운 이들에게 저지르기 마련이어서 제대로 된 수습도 쉽지 않다. 흐지부지 넘어가 볼까 싶어 모른 척하려 해도 내내 꺼림칙하고 마음이 쓰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야말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자책으로 밤을 지새워 본 경험이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더구나 상대가 어린 자식, 늙은 부모, 동생, 후배, 부하 직원, 오랜 친구처럼 나보다 절대적으로 약하거나 친밀한 대상일수록 죄책감은 커지게 마련이다. 사람마다 느끼는 죄책감의 강도에 차이는 있을지언정, 상식이 통하는 보통의 사람이라면 양심의 가책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거라고 믿는다.

재벌 일가의 상상을 초월하는 갑질 행각은 수도 없이 목격했지만, 그가 제집에서 일하는 외국인 가사도우미에게 부렸다는 그 패악은 지금껏 보아온 어떤 폭력의 현장 못지않게 충격적이었다. 더구나 그 모두가 어린 손녀 앞에서 벌어진 일이었다고 하니, 딸이 구속되어 있던 시기였음을 고려해도 이해하기 힘들긴 마찬가지다. 그를 그토록 흉포하게 만든 것은 아마도 그가 가진 엄청난 돈과 그 돈으로 사들인 권력일 것이다. 돈과 권력을 모두 쥐었으니 무서울 게 없다고 생각했겠지. 문득, 나 역시 돈과 권력이면 안 되는 게 없는 세상이라 치부한 채 너무 간단히 포기해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침묵은 암묵적 동조와 다르지 않고 불온한 힘은 침묵 속에서 비대해진다. 꼭 완력을 써서 몸을 상하게 해야만 폭력이 아니고 때론 말이 칼보다 더 큰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는 것만으로 지켜지는 것은 없다. 나는 그가 저지른 폭력 앞에서 무고한가.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졌다. 전설 속 괴물의 울부짖음과도 같은 녹취를 듣는 내내, 그것이 사람의 음성이라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아 몸이 떨렸다.

황시운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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