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하주원] 거기 자리 있어요



공중목욕탕에 갈 때마다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왜 다들 자리를 맡는 것일까? 샤워기가 있는 좌석에는 어김없이 이미 바구니와 수건으로 자리가 맡아져 있다. 유명한 온천,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 찜질방, 동네 낡은 대중탕 모두 마찬가지다. 남탕에 가본 적이 없으므로 남탕에서는 그렇게 자리 맡는 일이 전혀 없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측정해본 적은 없지만 분명 여탕 이용자의 짐이 더 많을 것이다. 깜빡 잊고 안 갖고 온 경우를 제외하면 비치된 비누를 그냥 쓰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단순히 목욕 짐이 많은 탓이라면 그 자리에 두더라도 다른 사람이 쓰고 있을 때 자기 짐을 치우는 것이 맞다. 하지만 미리 짐을 놔둔 자리를 다른 사람이 사용하고 있을 때 오히려 내 자리라며 비키라고 한다. 가끔은 멀리 탕에서도 소리를 친다. “거기 자리 있어요.”

4년 전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세체리니 온천에 갔을 때, 그곳 여자들도 짐이 많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여탕에 자리 맡는 사람은 없었다. 관광객들이 많아 서로 눈치를 봐서 그럴 수도 있다. 우리나라 여탕이 유독 심한 까닭에 대해 광복 및 6·25전쟁 전후 여성의 교육 수준이 낮은 환경, 개발도상국의 환경과 가부장제 잔재 속에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체면조차 버리고 살았던 여성의 힘든 삶을 상징하는 것일까 생각해 보았다. 정신과의사라면 그렇게 문화와 심리를 연결시킨 글을 써야 멋있을 것 같아 억지로 분석해보았으나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이렇게 설명하려면 최근 젊은 세대가 많은 곳에서 자리 맡기 현상이 덜해져야 하는 것 아닌가. 여전히 워터파크와 함께 있는 사우나에서 대여섯 시간 놀다 들어오는데도 자리를 일단 맡고 가는 경우를 보게 된다. “오후에 오면 자리 없어”라는 이기심이 목욕탕에서는 왜 그리 당연하고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경쟁 사회에서 자기가 가진 것을 뺏기지 않고 싶어 맡아두는 행위라고 마무리를 짓고 싶지만, 도서관에서도 자리 맡기 문화가 사라져가는 마당에 왜 우리나라 여탕만 여전히 심하고 빈자리가 없는지 설명하기 힘든 내 지식의 한계를 탓한다. 앞으로 없어졌으면 하는 문화임에는 분명하지만 말이다.

하주원 의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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