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하주원] 개인사의 반복



더 이상 새롭지도 놀랍지도 않은 이야기였다. 제자에게 물리적, 성적 폭력을 가했다는 의혹을 받는 코치가 막상 선수 시절엔 누구보다 폭력을 싫어하는 사람이었고, 다른 후배가 폭행을 당했을 때 위로해주는 선배였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거짓말 같은 반복. 하지만 거짓말이 아니다. 한때 피해자였던 사람이 왜 가해자가 되는 것일까?

박노해 시인의 말처럼 자녀는 부모의 부족한 부분을 먼저 닮는다. 부모의 가정폭력을 겪고 자란 사람이 가족 구성원 가해자를 미워하고 그렇게 살지 말아야지 결심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학대를 당한 사람이 앞으로 폭력의 가해자가 될 확률은 보통 사람의 2배가량 높다. 흡연자가 폐암에 걸릴 확률이 3배인 것을 감안하면 2배란 통계적으로 높은 수치다. 심지어 입양으로 유전적 관련이 없어도 보고 배우는 것만으로도 영향을 받는다. 물론 ‘보고 배운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고 ‘겪고 배운다’가 더 정확할 것이다.

만성적 폭력 속에서 피해자는 무력감을 느끼고 공격자와의 동일시를 통해 스스로를 방어한다. 피해자들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폭력의 상황에서 가해자에게 어떻게 할 수 없는, 그 옥죄는 무력감을 느끼고 일단은 가해자의 질서에 편입될 수밖에 없는 피해자의 마음을. 잔인하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위계가 굳어지는 것. 피해자가 공격자와 동일시되는 것은 가정에서 대물림되는 경우가 흔하며 직장, 교육기관 등에서 수십 년, 수백 년 후까지 가지를 뻗는다. 게다가 ‘애를 때리긴 했지만 부모님이 나한테 했던 것보다는 낫지’ 또는 ‘우리가 배우던 시절에는 훨씬 심했어’라고 하면서 합리화한다.

폭력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는 것은 개인의 역사에서도 어려운 일이다.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가 되는 일이 이 세상에서 싹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나라도 가해자를 닮지 않는 것이 바로 폭력의 피해자로서 할 수 있는 승리의 핵심이다. 모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머리가 이성적으로 습득하고 합리적으로 사고하더라도 우리 몸은 오래된 기억을 지니고 살기 때문에 당한 대로 하지 않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피해자들의 승리를 기원하며.

하주원 의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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