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하주원] 내 고통으로 돕는 자조모임



자조모임은 같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끼리 돕는 집단으로 가장 먼저 시작된 것은 1935년 ‘익명의 알코올중독자들(AA)’이었다. 의료진이나 상담사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겠지만, 아무리 내담자를 이해하려 해도 똑같은 고통을 겪어 본 건 아니다. 그래서 환우와 그 가족들이 어려움을 공유해 재발을 예방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자조모임을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알코올중독자뿐 아니라 도박중독자(단도박모임), 성폭력피해자, 발달장애인, 자살유가족 등 여러 자조모임이 있다. 단순히 정보를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서로서로의 심리적 트라우마를 치유해줄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질병과 고통을 혼자만의 것이고 아무도 이해해주지 못한다고 느낀다. 나와 같은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대면한다는 자체만으로도 위안을 얻을 수 있다. 물론 자조모임에 참석하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다. 시간이나 거리가 멀다는 문제를 비롯해 자조모임도 사람이 있는 곳이라 그 안에서도 갈등은 있기 때문이다. 환자에게 자조모임을 권유했더니, 일부 선배들이 먼저 경험했으니 내 말을 따르라고 섣부른 충고를 하거나 같은 병이라도 다들 상황이 다른데 서로 비교를 해서 상처받아 참석이 어렵겠다고 하는 경우도 보았다. 몇 년 전 나도 가족의 질병 때문에 자조모임에 참석했으나 내 마음을 털어놓기를 강요당하는 느낌에 꾸준히 참석하지 못했다.

이런 어려움이 있으므로 자조모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것도 능력이며, 마음이 깜깜하게 닫히거나 아무것도 내려놓지 않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최근에 가깝던 분이 황망하게 돌아가셨는데, 그분을 모르던 사람들보다는 나와 같은 입장으로 비슷한 감정을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가장 도움이 되었다. 아무도 자기 삶의 고통스러운 순간을 계속 꺼내 보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런데 그 고통을 꺼내서 들여다보고 다시 느끼고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며 다독여주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조모임 안에서 스스로와 남을 돕는 사람들은 얼마나 훌륭한가. 앞으로 다양한 분야의 자조모임이 더욱 확대되기를 기대한다.

하주원 의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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