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래 칼럼] 한반도 평화의 길 올해도 다져가야



남북의 선한 의지와 논의조차 한반도 문제의 일부일 뿐… 文 정부, 좀 더 지혜로워져야
국민과 갈등하고 이웃나라와 대립하며 한반도 평화의 길을 가겠다는 자세 너무 안이해


해가 바뀌고 두 주일이 지났다. 연초인데도 분위기는 그리 밝지 않다. 혹한 탓도 있겠으나 정치·경제 상황들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 아닌가 싶다. 지난해 이맘때만 해도 문재인정부에 대한 기대감이 넘쳤는데 지금은 적잖이 시들해진 탓도 있겠다.

지난해는 새해 벽두부터 기대감이 넘쳤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신년사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대표단 파견’을 밝혔고 한국 정부는 곧바로 남북 고위급협상을 제안했다. 이로써 남북대화는 빠르게 재개됐다. 이어 세 번의 남북 정상회담과 첫 북·미 정상회담도 열렸다. 2018년은 그야말로 한반도 평화가 손에 잡힐 듯 펼쳐진 한 해였다.

들뜨던 1년 전에 비하면 지금은 마치 철 지난 바닷가에 앉아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지난여름 과용한 감정 탓에 닥쳐올 청구서 걱정이 앞서는 것일까. 남북대화 재개는 우리의 기대치를 한껏 높여줬지만 이뤄낸 건 그리 많지 않다. 비핵화와 관련한 성과로 북한의 미사일 발사장 폐쇄, 한·미 연합훈련 중단이 ‘고작’이다.

‘고작’이란 우리의 기대감이 커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더불어 남북문제나 한반도 평화구축 이슈와 관련한 문 정부의 대응에도 불안감을 느낀다. 한반도 문제는 70여년이나 묵은 고질이며 특히 비핵화는 이해관계자가 미·중·일·러 등으로 퍼져 있다. 남북의 선한 의지와 논의결정은 이 문제의 일부일 뿐이다. 문 정부는 좀 더 지혜로워져야 한다.

지난해 나는 이 칼럼자리에 25건을 썼다. 주제별로 나눠보니 ①‘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이슈’가 가장 많은 8건, ②‘경제 문제 등 정책 비판 및 제언’과 ③‘일반 이슈’가 각각 6건, ④‘일본 및 한·일 관계 이슈’가 5건 순이었다. 다만 ②와 ④의 내용도 주로 ①을 위한 전제조건과 관련한 것들이었다. 쏠림현상이 꽤 심하다.

11년 만에 재개된 남북 정상회담이나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을 감안하면 의식의 쏠림현상은 차라리 당연하다. 한반도 문제, 즉 한반도의 대립구도 종식과 평화의 길을 모색하는 일은 지난 1945년 광복 이후 한반도의 으뜸과제다. 으뜸과제가 그렇듯 오랫동안 꼬여 있었다면 복잡한 이해관계가 개입돼 있음은 불문가지다. 신중한 접근은 당연하다.

정부에 요청되는 것은 세 가지라고 칼럼에서 써왔다. 첫째는 정부가 한반도 평화의 길을 으뜸과제로 인식하는 것이다. 둘째로는 국민 모두가 으뜸과제 인식에 동참하도록 정부가 유도해야 한다. 셋째로는 주변국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그들이 기꺼이 한반도 평화의 길을 위한 지지자로서 또한 증인으로서 역할을 하도록 요청하는 일이다.

첫 과제는 잘 감당했다. 집권 직후인 2017년 7월 신베를린선언을 통해 한반도 평화, 비핵화, 항구평화체제 구축, 신경제구상, 비정치적 교류협력 지속 등을 주요 얼개로 구성한 ‘한반도 평화구상’을 밝혔다. 한반도의 으뜸과제를 정부가 깊이 인식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줬다. 지난해 김정은의 신년사가 나온 바로 그 다음 날 남북대화를 요청할 정도로 민첩하게 대응했던 점도 믿음직스러웠다.

그러나 두 번째 임무부터는 꼬이기 시작했다. 정책 방향과 추진방법 간의 불협화음이 불거졌고 그 과정에서 정부는 마이웨이를 고수했다. 국민의 불만과 불안감은 고조될 수밖에 없었다. 정부가 아무리 한반도의 으뜸과제를 강조한다고 하더라도 경제상황이나 삶의 현실에서 불안감이 앞서게 되면 국민들이 정부의 주장에 동조하기란 쉽지 않다.

양극화 완화, 비정규직 해소, 장시간·저임금노동 극복, 복지 확대 등은 꼭 필요한 정책방향이다. 다만 문제는 정책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 속도조절이나 단계적 목표설정도 필요한 법이다. 더구나 정부의 목표와 방법이 다 옳을 수도 없다. 전문가와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정부의 주장은 독선에 지나지 않는다. 한반도 으뜸과제를 수행하자면 우선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야 하는데도 문 정부는 이 점에 소홀하다.

세 번째, 즉 주변국과의 협력관계 구축에도 문 정부는 성과를 내기는커녕 불화를 키운다. 대일 관계가 특히 그렇다. 문 대통령은 10일 신년기자회견에서 일본 기자의 질문에 대해 “일본의 정치지도자들이 (양국 갈등에 대해) 지혜를 모아야지 정치 쟁점화하거나 논란거리로 만드는 것은 현명한 태도가 아니다”고 답했다. 백번 옳은 지적이다. 그런데 문 정부는 과연 일본과 ‘지혜를 모으기 위해’ 무엇을 했었나. 제대로 된 노력 없이 상대에게만 지혜롭게 풀어가자고 한다면 그 누가 마음 문을 열 수 있겠나.

엄중한 상황인식, 국면 돌파를 위한 각고의 노력, 그리고 목표를 위해 자신을 내려놓겠다는 겸손한 자세가 절실하다. 문 정부의 성찰이 요청된다. 국민과 갈등하고 이웃나라와 대립하며 한반도 평화의 길을 가겠다는 자세는 너무 안이하다. 어떻든 올해도 한반도 평화의 길은 다져가야 할 게 아닌가.

조용래 대기자 jubi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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