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황시운] 당신 없이 맞는 새해



한 해의 마지막 날, 아빠가 안 계시는 아빠 집에 가족들이 모였다. 아빠가 돌아가신 뒤론 처음 있는 일이었다. 우리는 웃고 떠들며 마련해 간 음식과 술을 먹고 마셨다. 아이들을 위해 아이스크림케이크도 준비했다. 아이들이 한 사람씩 돌아가며 소원을 빌고 촛불을 불어 끌 수 있도록, 촛불에 불을 붙이고 뒤죽박죽인 축하 노래 부르길 반복했다. 촛불 끄기가 다 끝나자 아이들은 각자 숟가락을 들고 아이스크림케이크에 달려들었다. 다른 때와 달리 아무런 제재 없이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게 된 아이들은 왁자지껄 즐거워했고, 그런 아이들 모습을 지켜보는 어른들도 덩달아 행복해졌다. 평소보다 길었던 식사가 끝난 뒤엔 언제나처럼 편을 나눠 윷놀이를 했다. 진지하게 놀이에 임하는 아이들을 놀려주려 가벼운 눈속임을 쓰는 어른들과 그걸 눈치 챈 아이들 간엔 유쾌한 실랑이가 이어졌고, 나름대로 치열한 말판 싸움 끝에 승부가 갈렸다. 놀이에서 진 편의 아이들 중 누군가는 골을 부렸고, 그 모습이 귀여워 어른들은 또다시 한 마디씩 거들어서 기어이 아이를 울리고 말았다. 아이는 설날이 아닌데도 세뱃돈을 약속받은 뒤에야 울음을 그쳤다.

자정이 넘어 아빠가 생전에 쓰시던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지만 쉬 잠이 오지 않았다. 컴컴한 천장을 올려다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끝에, 작년까지 아빠와 함께하던 모든 일을 아빠 없이 하면서도 아빠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아빠가 돌아가신 지 이제 겨우 석 달이 되었을 뿐인데, 우리끼리만 너무 먼 곳까지 와버린 것 같아 죄책감마저 들었다. 이제는 생전에 그토록 귀애하던 막냇손자가 가족사진 속에서나 찾아낼 수 있게 된 ‘하부지’는 지금쯤 어디에 계실까. 그곳에서도 우리를 지켜보고 계실까. 만약 그렇다면, 당신 없이도 즐거워하는 가족들을 어떤 심정으로 지켜보셨을까. 모든 존재는 결국 이렇게 허무하게 잊히고 마는 것일까. 서글픈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날 밤, 나는 사무치는 그리움과 죄책감 사이를 하염없이 오가다 새 하늘이 희부여니 밝아올 무렵에야 간신히 잠들 수 있었다. 하늘 같던 존재가 사라졌지만, 남겨진 이들은 또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황시운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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