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하주원] 평범한 사람의 지독한 불운



평범한 사람의 지독한 불운에 대해. 여러 번 곱씹어 생각해봐도 인생에 대한 의문이 커질 뿐이다. 어렸을 적 읽던 동화에서는 착하고 열심히 살면 행복한 결말을 맞았다. 우리가 삶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거짓말이었다. 순한 사슴이 사자에게 잡아먹히는 결말의 과학책이 더 진실되다는 것을 지금은 알지만. 결국 신이 있는지 없는지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는 그 질문이었다.

이런 답 없는 질문에 대해서 교수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어느 날이 떠오른다. 많은 사람들은 교수님을 2018년 마지막 날에 진료하다 환자의 칼에 찔려 돌아가신 정신과 의사로 기억하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나에게는 결말이 아닌 다른 소중한 기억이 많다. 내가 인턴으로 강북삼성병원에 들어가던 해 교수님으로 부임하셨고 열정에 넘치는 질문을 방어하느라 1년차 때 진땀 흘렸다. 그 열정에 지금은 감사한다. 다른 교수님들만 계셔도 나는 정신과의사가 되었겠지만, 임 교수님이 계셨기에 연구자도 될 수 있었다. 내 논문 중에는 교수님과 같이 쓴 것이 훨씬 많을 정도이고 함께 학회지도 만들었다. 과분한 기회가 많았다. 교수님의 저서가 나왔을 때 퇴근길 내 병원에 들러 방금 나온 책이라며 직접 주셨던 기억이 생생하다.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힘들 때 내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투병과 죽음은 인생에서 극히 일부일 뿐이고 그 죽음에 비해 훨씬 더 길었던 삶을 기억하라고. 전문의 시험을 한 달 앞두고 임산부의 몸으로 아버지 장례를 치르느라 힘들었던 그때, 고마웠던 그 말씀을 이렇게 되뇌게 될 줄은 몰랐다. 결말 한 페이지가 비극이라고 해서 그 앞에 그 사람이 살아온 날이 모두 비극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슬픈 추억 같은 것을 나눈 사이가 전혀 아니었는데, 갑자기 모든 기억이 슬픈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평범한 사람의 지독한 불운. 평범하다는 말은 조금 안 어울리는, 훌륭한 사람과 소중한 가족에게 닥친 불운. 결말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지만, 나는 마지막 페이지가 아닌 그 앞부분을 더 선명하게 기억하고 싶다.

하주원 의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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