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신용목] 하루가 지나갈 뿐이지만



2018년이 딱 하루 남았다. 오늘과 내일, 하루 동안엔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나는 이런 쓸모없는 질문에 종종 붙들린다. 가령 2018년 23시 59분 59초와 2019년 00시 00분 사이, 단 1초 사이에 벌어지는 일 같은 데 말이다. 도대체 그 1초에게는 무엇이 있어서 세상의 모든 달력을 바꾸고, 누군가의 생몰연대를 달라지게 하며, 한 사건의 범법과 합법까지 갈라놓는 것일까.

1972년 프랑스에서 열린 세계도량형 총회에서 세슘원자시계를 국제표준시계로 채택하면서 세계는 공통된 시간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자전과 공전 주기로 결정되는 천문시와 진자운동으로 측정하는 원자시가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건 순전히 우주의 변덕 때문인데, 지구 내부의 지질운동과 달과의 인력 등에 의해 천문시가 조금 빨라지거나 느려지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파리에 있는 국제도량형국에서 대략 2년에 한 번꼴로 1초를 더하거나 빼야 했고 세계의 시간은 약속대로 그에 맞춰졌다.

초 단위의 정밀함을 요하는 분야에서는 오작동이 발생할 수 있어 반갑지 않은 일이겠지만, 생겨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1초는 꼭 눈사람이 나타나거나 없어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느낌을 준다. 우주는 변덕조차도 마술 같다고 할까. 누군가에게 보태진 1초는 긴박한 순간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시간이고, 누군가에게 지워진 1초는 때를 놓쳐 영영 사랑을 잃을 수 있는 시간이다. 묵은 통장에서 찾은 잔금처럼 어느 날 불쑥 생겨나는 1초가 신비로운 만큼, 캄캄한 별자리 속으로 사라지는 1초를 생각하면 왠지 외로워지기도 한다.

우주에서 일어나는 이 알 수 없는 일들이 모두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에서 내일로, 단 하루가 지나갈 뿐이다. 1초 속에 숨어 있는 숲과 계곡과 낭떠러지를 생각하면 하루를 지나가는 일은 기적 같지만 우리는 오늘도 그 기적을 거뜬히 이뤄냈다. 한 해 동안 이룬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 아쉽지만 정작은 그 시간을 살아낸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아름답다.

신용목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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