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하주원] 오랜만에 무슨 말을



자주 만나는 사람과 할 말이 많고,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과 할 말이 적다고들 한다. 한때는 매일 밥을 같이 먹고 비밀 없던 친구들이었는데 예전처럼 한 동네에 사는 것도 아닌데다 각자 바쁘다 보니 훌쩍 십 년이 흘러 있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지만 시간이 흐르니 그 시절 서로에게 갖던 이미지와 현재는 많이 달랐다. 세상 욕심 많던 친구가 세상사에 너그러워진 모습도, 자신감 있던 친구가 조심스러워진 모습도 낯설었다. 옛 기억으로 돌아가는 것이 싫은 까닭은 꼭 불행해서가 아니라 옛 기억을 끄집어내면서 딸려 나오는 내 모습이 싫기 때문이다. 십대 시절 지금보다 감정적이고 뾰족하고 내 멋대로 가벼웠던 내 모습이 누군가의 머릿속에 남아 있다는 것이. 뜀틀 위에 주저앉았다거나, 반 애들 앞에서 출석부로 맞은 것, 짝사랑하다가 차였다거나, 그런 것이 큰 잘못도 아닌데, 오랜만이니 모두 부끄러웠다.

과거의 증인 앞에서 지나간 시간을 숨기고 싶다보니 괜히 초조해진다. 같이 앉아 있어도 혼자 머릿속에 불안이 차오른다. 그런 마음으로 할 수 있는 대화는 미래에 대한 재촉이 되어버린다. 나도 재촉 당하는 것이 싫으면서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서는 재촉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는 계획을 자꾸 묻는다. 학교는 어떻게 할 거니, 거기서 계속 살 거니. 미래로 시선을 돌린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과 대화를 하면 이런 경향이 더욱 심하다. 친척이란 서로에게 자주 만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죽기 살기로 대학에 들어갔더니 취직은 어떻게 할 거냐 그러고, 결혼을 하자마자 아이를 언제 낳느냐, 이렇게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는 질문이 계속된다. 다들 현재의 시간을 공유하기에는 너무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이고 과거의 이야기는 꺼내서 보기가 두렵기 때문 아닐까. 자주 만나 현재를 나눌 수 있어야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된다. 좋은 사람도 오랜만에 만나면 별로 좋지 않을 수도 있다. 오랜만에 만나 제대로 된 진심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현재의 나를, 훗날이 되면 또 부끄러워하게 될까.

하주원 (의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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