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신용목] 인간을 위한 최소한



서부발전에서 일어난 사건처럼 끔찍한 뉴스는 나도 모르게 피하게 된다. 간신히 내게 깃든 평온이 나와 무관한 것들로 흔들리는 게 싫은 마음. 이 마음은 잘못이다. 세상은 생각보다 견고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나의 무심함이 누군가의 비극이 되고 또 그 비극이 나의 현실이 되는 일은, 설령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할지라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발전’이라는 말에 현혹되어 저버렸던 ‘인간다움’이 비극으로 돌아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새삼 이상한 것은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섰고 국민총생산도 높아졌다는 뉴스다. 일자리 환경과 실업률로 보자면 돈을 벌기도 힘들고 돈을 벌 수도 없는 사람이 늘었는데 돈은 많아졌다는 것 아닌가. 최근 인권과 복지를 위해 경제 현실을 저버린 정책을 탓하는 목소리를 잘 안다. 그러나 경제성과 효율성을 내걸고 돈을 위해서라면 인간조차 쓰고 버리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던 데 대한 부작용이 지금 우리 앞에 도래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제 노동과의 교환을 통해 재화를 생산한다는 정직한 믿음이 통하는 데는 많지 않다. 부동산이나 가상화폐처럼 자본은 개인의 욕망을 부추김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데, 탈락과 소외의 공포감을 통해 모두를 그 경쟁에 동참시킨다. 여기에 자유가 있다면 부자가 되고자 하는 욕망의 자유이며 그로써 실패의 책임을 스스로에게 돌리는 절망의 자유다. 실로 우리는 타인과의 끝없는 경쟁과 비교우위 속에서 연속적인 불안을 위태롭게 떠안고 산다. 이런 자본 우위의 구조에서 모두를 만족시키는 정책은 불가능하지만 최소한의 ‘인간다움’만큼은 지켜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경쟁을 통해 재화를 생산한다는 것은 다수의 참여가 없다면 재화의 생산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며, 실패 역시 재화를 생산하는 하나의 요소라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실패에도 합당한 사회적 대가가 지불되어야 한다. 그것을 나는 기본소득이라고 생각한다. 경제적 인권은 확대되어야 한다. 함께 살 수 없다면 아무도 살 수 없다.

신용목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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