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신용목] 내가 누군지 알아?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란 시가 정치 뉴스에 회자된 적이 있다.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로 시작하는 이 시를 한 정당이 인재 영입 슬로건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슬로건은 시 중반에 나오는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라는 구절과 맞물려 정치의 계절에 유요한 울림을 만들어냈다. 또한 저 시는 청년의 삶과 사랑을 다룬 드라마에서도 인용되었는데, 시대의 상처와 마음의 위태로움을 다루는 드라마는 다음 구절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사람이 온다는 것은 (중략)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며칠 전 산책길에 한 공영주차장 앞을 지나다가 누군가 차창을 내리고 소리치는 말을 들었다.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말. 아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외진 선술집을 허름하게 돌아 나오던 동네 어른들이 그랬던 것처럼, 살아온 고단함에 비할 때 턱없이 적은 보상으로 돌아오는 생의 울분이 저 말속에 섞인 경우도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저 말은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앞세워 특혜를 누리고 싶을 때 주요하게 쓰인다. 주차관리인이 규정을 읊으면서도 마치 그게 자신의 잘못인 듯 그에게 굽신거리는 이유도 ‘미처 몰랐고 사실 알 필요 없었던 그의 실체’ 때문이었을 것이다.

누군가의 실체는 집요하게 그에게 달라붙어 있는 것 같지만 사실 허상에 불과할 때가 더 많다. 한 사건이 과거와의 필연성 속에서 일어나기보다는 그 사건으로 인해 과거가 재구성되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은 그의 말과 행동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지, 명함이나 인사카드에 찍혀 있는 차가운 몇 줄이 아니다. 사람이 왔을 때, 그의 일생 전체를 가늠하고 영향력을 따지는 것은 정치의 영역이다. 하지만 우리는 매 순간 웃고 울며 숨쉬는 현재의 그와 함께 살아간다. 부서지기 쉽고 깨지기 쉬운 마음과 함께 말이다. 식당 종업원에게 모든 손님은 배고픈 자일 뿐이고, 사랑에 빠진 자에게 상대는 사랑일 뿐이다. 그것 말고 다른 진실은 없다.

신용목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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