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황시운] 모두를 구하는 그물



누구나 갑자기 닥치는 사고나 재난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을 것이다. 가끔, 예기치 못한 재난이 닥쳤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생각해보곤 한다. 현재 나는 아파트 5층에 거주하고 있다. 그러나 계단을 이용할 수 없는 지체장애인이다. 재난 시엔 승강기 사용도 금지되어 있다. 베란다에 완강기가 설치돼 있지만, 혼자 있을 땐 그 역시 무용지물이다. 결국 자력으로는 대피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럼 난 어떻게 해야 할까. 볕이 잘 들고, 휠체어 생활이 가능하며, 제대로 된 응급실을 갖춘 병원과 가까운 아파트 1층으로 이사해야 할까. 그런 집이 가난한 날 두 팔 벌려 기다리고 있을 리 없는데. 아니면, 그냥 손놓고 죽음의 순간을 기다려야 하는 걸까.

지난주말 KT 아현지사 건물의 지하 통신구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그로 인해 한강 이북 서부 일대의 통신망이 완전히 마비됐다. 사고가 일어나자 여기저기서 불편과 불안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참 후, 장애인들의 고통 어린 호소도 터져 나왔다. 그들은 영문도 모른 채 긴 시간 집안에 갇혀 있었다. 스마트폰이 먹통이 됐으므로 누군가에게 연락을 취해 무슨 일이 벌어진 거냐고 물을 수 없었다. 텔레비전 뉴스를 보거나 집 밖으로 나가 아무나 붙잡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원인을 알 수 없어 공포감은 증폭됐다. 무엇보다 그 긴 시간 내내 아무도 그들의 안전을 확인하지 않았다.

이번 사태를 통해 나는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한지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큰 재난을 겪을 때마다 모두가 한목소리로 요구했던 사회 안전망이 여전히 작동하지 않고 있음도 알 수 있었다. 사고와 재난이 일상이 되어 버린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위해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 또다시 무너진 것에 화가 났다. 그리고 모두가 나와 비슷한 심정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그 긴 시간 내내 죽음의 공포에 휩싸여 있었음을 고백하는 장애인을 과장 심하고 불만 많은 세금 도둑 취급하는 악성 댓글들을 보는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고 말았다.

황시운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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