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하주원] 질병의 역할과 이용



질병의 주된 역할은 당연히 악역이다. 사람을 죽게 만들고, 일을 그만두게 하거나, 끊임없이 통증에 시달리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질병이 늘 나쁜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때로는 병을 앓게 되면서 쉬지 않고 달리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현재를 소중히 하게 되어 가족과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거나 더 큰 병을 예방하기 위해 건강관리를 철저하게 하게 된다. 때로는 하기 싫은 일이나 미운 사람을 피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의 역할도 참 다양하다. 자녀가 ADHD가 의심된다고 하면 마치 암을 선고받은 것처럼 놀라며 펑펑 우는 부모도 계시다. 정신건강의학과 영역에서는 사실 아주 무겁거나 치료가 되지 않는 병이 아니라서 그 반응에 당혹스러울 때도 있다. 뇌의 신경전달물질 흐름에 문제가 있다는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면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으니 이해는 간다. 그런데 반대로 ADHD 진단을 받으려고 이미 마음먹고 방문해서 아니라고 하면 납득을 못하는 분도 계시다. 그 어떤 사람도 완벽하지 않다. 이런 내 아이가 부모 말을 듣지 않고, 학교나 학원 수업을 재미없어하고, 숙제도 알아서 하지 않는 모든 부분에 대해 ADHD라는 질병을 진단받으면 납득이 된다. 같은 질병이 어떤 사람에게는 절망을, 다른 누군가에게는 안심을 준다.

우울증에 대한 반응도 양극단을 달린다. 여전히 우울증은 의지의 문제라고, 절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고 몇 년째 치료를 꺼리는 사람도 있다. 한편, 어떻게든 우울증이라는 질병을 이용해 군복무나 근무를 피하거나 잘못을 저지른 것에 대한 대가를 덜 치르려고 하는 경우도 있다. 정신건강 문제는 정상과 비정상이 아니라 연속선상에 있기 때문에 자기의 과오나 부족함을 모두 질병 탓으로 돌려서는 곤란하다. 누군가에게는 고통이지만 누군가는 이용을 한다. 이용하는 사람이라고 꾀병은 아니며, 주관적인 고통이 존재한다.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 정신의학의 한계다.

하주원(의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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