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간 ‘제주 귤’… 김정은 답방·北美 회담 메신저 기대

제주산 귤이 담긴 상자가 11일 제주공항에서 공군 수송기에 실리고 있다. 북한의 송이버섯 선물에 대한 답례품인 귤 200t이 12일까지 이틀에 걸쳐 북측에 전달된다. 국방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송이버섯 2t 선물에 대한 답례로 제주산 귤 200t을 택했다. 김 위원장의 연내 서울 답방을 준비하고 있는 청와대가 여러 의미를 담아 답례품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의 한라산 방문 가능성, 그의 외조부가 제주도 출신이라는 점이 두루 고려됐다는 분석이다.

천해성 통일부 차관과 서호 청와대 국가안보실 통일정책비서관은 11일 오전 제주공항에서 군 수송기를 타고 평양 순안공항으로 가 제주산 귤을 전달했다. 북측에서는 전종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이 이들을 맞은 것으로 전해졌다. 귤 200t은 10㎏ 상자 2만개에 담겨 수송기 4대로 하루 두 차례 이날과 12일 이틀간 운송된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때 북측이 송이버섯을 선물한 것에 대한 감사 표시로 답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귤은 북한 주민들이 평소 맛보기 어려운 남쪽 과일이고 지금이 제철이라는 점을 고려해 선정했다”며 “대량으로 보내 되도록 많은 주민들이 맛보게 하고자 하는 마음도 담았다”고 했다. 청와대는 앞서 김 위원장이 평양 남북 정상회담 때 선물한 송이버섯을 북측 가족과 만나지 못한 이산가족들에게 추석 선물로 보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남북이 가는 정 오는 정을 주고받는 일에 너무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면 그 취지가 퇴색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기적으로 제주산 귤은 답례 이상의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청와대는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내년 초로 미뤄진 것과 무관하게 김 위원장의 연내 서울 방문을 추진하고 있다. 김 위원장의 답방이 성사되면 백두산에 이어 한라산을 방문할 가능성이 높다. 제주산 귤 전달을 계기로 천 차관과 서 비서관이 방북한 김에 자연스럽게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 및 북·미 고위급 회담 재개에 대한 의견교환을 했을 수도 있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전날 한라산 정상에 올라 제반 사항을 점검하며 “헬기 착륙과 관련해 두 가지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백록담 분화구 안쪽 또는 기존 성판악 코스 주변에 착륙하는 방안이다. 제주는 1999년부터 2010년까지 남북 지자체 협력의 일환으로 감귤 북한 보내기 사업을 진행한 적이 있다.

제주는 김 위원장의 외조부인 고경택의 고향이기도 하다. 고경택은 1913년 제주에서 태어나 1929년 일본으로 건너간 뒤 오사카에서 김 위원장의 생모인 고영희를 낳은 것으로 알려졌다. 1962년 북한으로 간 고영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사이에서 정철·정은·여정 3남매를 낳았다.

북한은 최근 한국이 미국을 의식해 남북 철도·도로 연결 등의 협력 사업에 소극적이라고 불만을 표출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귤 선물은 남북 관계를 부드럽게 끌고 가겠다는 정부의 제스처로도 읽힌다. 정부 당국자는 “귤 선물은 비핵화와 남북 관계 진전을 위한 정상회담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지는 것”이라며 “농산물은 유엔 대북 제재 결의나 미국의 독자 제재 품목이 아니다”고 말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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