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하주원] 힘들지 않을 의무는 없다



감정은 곧바로 나타나겠지만 기분장애는 그렇지 않다. 어제 교통사고가 나서 오늘부터 잠을 못 자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상황은 간단하다. 납득하기 쉽다. 하지만 정서의 세계에선 이렇게 확실한 경우보다 원인과 결과에 시간차가 생기는 경우가 더 많다. 아동학대 경험이 80대 이후의 우울증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에서 보듯, 차곡차곡 부정적 감정이 끓어올라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로 흘러넘치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요즘과는 차원이 다른 구박을 수십년간 했던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 때는 별 증상이 없다가 막상 돌아가신 직후부터 오히려 불안과 불면이 나타난 경우도 있다. 이런 시간차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정신건강 문제라는 것이 원인을 꼭 알아야 회복되는 건 아니므로 의외로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 자체가 문제 되진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주변에서 공감하기는 더 어렵다. 커다란 한 가지 사건의 효과와 고통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도 자잘한 일상의 고통이 얼마나 다른 이의 마음을 갉아먹는지 그것까지 느끼지는 못한다. 직장 스트레스로 고생하는 사람에게 “너같이 좋은 회사에 다니고 가족도 멀쩡한데 무슨 고민이 있다고”라고 한다. 몰이해가 반복되면 본인마저도 ‘내가 배부른 소리 하는구나’ 생각하기 쉽다. 잘못 없는 감정이 야단맞는다. 차가운 가을비가 내리는 출근길에 나도 이유 없이 울고 싶었지만, 사실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에 눈물이 나는 이유를 몰랐을 뿐이다. 그 이유를 밝혀내라는 것이 아니다. 미세먼지나 무한경쟁처럼 어느새 당연해진 고통 때문에도 우리가 충분히 힘들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면 충분하다.

“너보다 힘들게 사는 사람 많아”라고 충고하는 것과 ‘나보다 힘든 사람 많으니 힘내자’라고 스스로 결심하는 것은 전혀 다른 시선이다. 각자의 무게가 있고 다른 이의 힘든 시간을 우리는 직접 느낄 수는 없다. 각자에게는 자기 몫의 고통이 있다. 누구도 힘들지 않을 의무는 없다.

하주원 (의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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