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황시운] 축제



“거긴 고통 같은 거 없는 세상이라니까 무서워하지 말고 편히 가요. 가서 엄마, 아버지 만나 그간 못 나눈 얘기도 나누고 맛있는 것도 해 먹으며 재미나게 지내고 있어요. 그렇게 잘 지내고 있으면 나도 곧 갈 테니까. 응?” 숨이 잦아드는 아빠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엄마가 말했다. 나는 아빠가 가려는 그곳이 이곳보다 아름답기를, 엄마의 말처럼 고통 없는 세상이기를 빌고 또 빌었다. 그래야만 아빠를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현실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차갑게 식어가는 아빠를 하릴없이 지켜만 봐야 했던 시간은 말할 수 없이 슬프고 두려웠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다른 감정이 끼어들 틈 없이 오로지 슬프고 두렵기만 했던 건 임종 때까지였던 것 같다. 이후의 장례 과정은 난생처음 느껴보는 복잡한 감정들이 뒤엉킨 채로 시끌벅적하게 지나가 버렸다. 그것이 남겨진 이들을 위한 ‘위로’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장례식이 모두 끝나고 다시 혼자 남겨졌을 때였다.

사흘간의 장례식과 이틀 뒤 삼우제까지,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슬픔에 압도돼서 제대로 상을 치르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했던 것과 달리, 우리는 내내 울었지만 자주 웃으며 서로를 안아줬다. 바깥출입을 거의 하지 않아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이들과 일면식도 없이 SNS나 지면을 통해서만 교감해 왔던 이들까지 기꺼이 찾아와 주었다. 이런저런 오해가 쌓이면서 남보다 못한 관계로 지내던 친지들과도 거짓말처럼 화해할 수 있었다. 노인들은 서로 손을 맞잡거나 얼싸안은 채 흐느꼈고, 어른들의 얼굴을 기억하는 젊은이들은 자리를 옮겨 다니며 인사했다. 지루해진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깔깔대다가 느닷없이 티격태격하기도 했다. 검은 휘장과 하얀 화환이 줄을 이었고 음식 냄새와 꽃향기, 싸구려 향냄새가 뒤엉켜 눈과 코가 매웠다. 도무지 슬픔에만 잠겨 있을 수 없도록 몰아치는 소란 속에 놓이고 나서야, 선생이 어째서 장례를 축제라 칭했는지 비로소 알 것 같았다. 하나의 삶이 이생을 지나갔고, 남겨진 이들은 축제로 그를 떠나보냈다.

황시운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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