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황시운] 그들은 만나야 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선물한 2t의 송이버섯이 고령의 이산가족 4000여명에게 추석 선물로 전해졌다. 지난 며칠간 북녘에서 온 버섯을 선물 받은 이들에 대한 신문 기사나 뉴스 영상을 여럿 접할 수 있었다. 송이버섯을 어루만지며 눈물짓는 노인들의 손길은 한없이 애틋해 보였다. 그들은 버섯을 단순한 먹거리가 아닌 고향 그 자체라 느끼는 것 같았다. 고향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고 살아왔음에도 가슴 한구석이 저릿해지면서 울컥 눈물이 솟았다.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할 때마다 상봉 신청을 했지만 한 번도 선정되지 못했다는 노인의 사연은 더할 수 없이 쓸쓸했다. 노인은 치매 전 단계인 경도 인지장애로 인해 약을 먹은 지 10년이 넘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노인은 지난 4월 대한적십자사에 낸 상봉 신청서에 헤어진 지 70년이 다 되어가는 네 동생의 이름을 또박또박 적어 넣었다고 한다. 노인에게 네 동생은 가슴에 맺힌 멍울,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잊지 못할 가장 먼 기억이었을 것이다.

혈육과의 이별처럼 슬픈 일이 또 있을까. 이 나이까지도 걸핏하면 아웅다웅 다투지만 나 역시 동생이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도 싫다. 반나절이면 가지 못할 곳이 없는 좁은 땅에서 피붙이의 생사조차 모르고 살아왔다니 그 잔인한 세월을 견디는 동안 쌓인 그리움의 깊이는 감히 짐작조차 못하겠다. 아직 생존해 있는 이산가족 1세대 중 상당수가 이미 팔순을 넘겼다. 구순을 넘긴 이들도 적지 않다. 머지않은 미래에 세상을 등질 수밖에 없을 노인들에게 우리는 어떤 약속을 할 수 있을까. 어느 때보다 큰 변화와 가능성을 목격하고 있지만 약속이 지켜지고 정말로 길이 열리기까지는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지난한 과정들이 남아 있을 것이다. 아, 정치적으로라니. 공연히 불길하다. 정치가 무엇인지, 나 같은 사람이 다 알 도리는 없다. 다만 정치는 가장 약한 이들, 오래 아팠던 이들, 소중한 걸 빼앗긴 이들을 어루만질 수 있어야 한다고 믿을 뿐이다. 그리움이 한이 된 이들의 만남을 막아선다면 그건 좋은 정치가 아닐 것이다.

황시운(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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