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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수의 감성노트] 마음보다 몸이 먼저다


 
김병수 정신과 전문의


스트레스에 대한 강의를 할 때, 내가 제일 강조하는 것은 운동이다. 스트레스는 몸을 써서 푸는 게 최고다. 사람들은 누구나 스트레스 받는다. 살다 보면 심한 우울을 누구나 한두 번쯤 겪지만, 모든 사람이 우울증을 앓지는 않는다. 스트레스가 우울증으로 이어지는 것은 몸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을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라면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라”고 해야 할 것 같지만, 나는 이런 의견에 반대한다. 물론, 자기 마음을 제대로 보고 성찰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쌓여서 우울하고 짜증나 있을 때 마음속으로만 파고들면 더 불쾌해진다. 이럴 때 ‘나는 누구인가? 왜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는가? 내 문제가 무엇인가?’라는 고민만 붙들고 있으면 우울은 더 깊어진다. 스트레스는 부정적인 생각을 부르게 마련이고, 부정적인 감정이 마음을 지배하고 있을 때 자기 문제에 파고들면 부정적인 것만 떠오르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한 성찰은 평온한 상태에서 하는 게 이롭다. 그래야 감정에 오염되지 않은 관점으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긍정적 생각, 명상과 기도, 감사를 실천하는 것도 좋지만 스트레스를 풀고 우울증을 날려 버리는 데는 운동이 제일 효과적이다. 가벼운 우울증상을 앓고 있다면 운동만 꾸준히 해도 치료가 된다. 운동은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것만큼 효과적이다. 운동을 꾸준히 해서 심폐활량이 늘어나면 우울증을 예방할 수 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연구 초기 단계에 심폐활량을 측정한 뒤에 12년이 지나서 우울증이 걸린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례들을 비교했다. 심폐활량이 좋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50% 정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식상한 말이지만, 건강한 몸에 건강한 마음이라는 구호가 정확했던 것이다.

정신건강에 좋다면 어떤 운동을 얼마만큼 해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어떤 운동이든 꾸준히 하면 된다. 다만 중등도 이상의 강도 있는 운동을 꾸준히 해야 정신건강을 증진하는 효과가 나타난다. 중등도의 운동 강도라는 것은, 걸으면서 옆 사람과 대화하기 약간 어렵고 다소 숨이 찬 정도다. 이 정도의 강도로 하루 30분 이상, 주 3회 이상 하면 된다. 주 5회면 더 좋다. 운동을 많이 하면 할수록 그것에 비례해서 효과가 더 좋다. 하지만 운동을 중단하면 이런 효과들이 사라지므로 운동을 밥 먹는 것처럼 일상생활의 자연스러운 습관으로 자리 잡게 해야 한다.

“평소 일하면서 몸을 많이 쓰는데, 운동을 따로 해야 되나요?”라고 묻기도 한다. 육체노동을 하는데 따로 운동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운동을 하는 것과 노동으로 몸을 쓰는 것은 다르다. 일하면서 몸을 쓰는 것은 기분을 좋게 하거나 의욕을 증진시키는 효과가 없다. 그러니 따로 시간을 내서 운동해야 한다.

운동을 하면 자기 조절력도 강해진다. 호주의 한 대학에서 연구를 했다. 3개월간 꾸준히 운동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생활 습관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비교했다. 운동을 꾸준히 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돈도 아껴 쓰고, 충동구매도 적게 했으며, 술과 담배를 줄이고 감정 조절도 더 잘하게 되었다. 일을 미루는 습관도 줄어들고, 약속 시간도 잘 지키게 되었다고 한다. “나쁜 습관을 고쳐라”고 충고하지 않았는데도 이런 행동 변화가 나타났다. 규칙적으로 운동만 해도 건강한 생활 습관이 자연적으로 길러졌다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절제력이 부족하다며 걱정하는 말을 종종 듣는다. 인성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는데, 나는 체육 시간을 늘리는 것이 더 낫다고 본다. 괜히 타박하듯 “게임하지 마라, 인내심을 기르라”고 훈계하는 건 효과도 없을뿐더러 반발심만 불러일으킨다. 그보다는 운동장에서 뛰어놀면서 몸을 더 많이 쓰게 하는 것이 낫다. 체력이 강해지면 피로도 덜 느끼게 되니, 짜증도 자연히 준다. 친구들과 어울려 운동하면 사회성도 길러지고, 어떻게 행동해야 친구들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도 자연히 터득하게 된다. 이런 경험들이 누적되어 자기 조절력이 강화된다. 운동을 통해 신체에 대한 숙달감이 증가하면 자존감도 높아지고, 이렇게 획득된 자존감은 삶의 다른 영역으로 전파된다.

스트레스 받을수록 운동으로 신체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라”고 충고하는 데, 말처럼 쉽지 않고 효과적이지도 않다. 정신건강은 마음만 챙긴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신체를 활성화시켜야 마음의 활력도 얻게 된다. 마음보다 몸이 먼저다.

김병수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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