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하주원] 선택의 기회



광복절이 되면 내가 겪지 못했지만, 지금 우리 삶에 큰 영향을 주는 일제 시대에 대해 상상하고 고민해보게 된다. 나는 진주 하씨인데 같은 성씨가 전국에 22만명가량인 데다가 나는 수도권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하지만 경남 진주 인근에서 활동하며 독립투사들을 끔찍하게 고문했던 진주 하씨 경찰에 대한 이야기를 알게 된 후, 그저 성씨가 같다는 이유로 마치 내 잘못인 것처럼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사실이 아니길 바라지만, 진주 하씨 문중에서 그의 친일 행적에 대한 기록을 없애기 위해 애썼다는 소문을 듣고도 몹시 부끄러웠다.

물론 어떤 사람이 나에게 지금 2018년의 세상에서 얼마나 제대로 살고 있길래 남더러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말한다면 할 말이 없다. 친일 행위에 대해서 현재의 우리가 비판할 자격이 있느냐고, 만약에 그 시대에 살았더라면 누구나 그랬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상황이 되어 보지 않았다고 우리 역사에 새겨진 상처의 시대에 대해 숨죽이고 입 다물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생계나 자식을 위해서 그냥 일제에 순응한 정도가 아니라 정말 앞장서서 친일 행위를 한 사람도 많다. 그런데 ‘그런 상황이 되면 더 나은 선택을 할 자신이 있어?’라면서 선택의 기회 문제로 비판을 원천봉쇄하는 것은 결국 우리 시대의 친일파를 낳는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시대의 불행을 기회로 삼고 약자를 착취하는 것이 지금 시대의 친일파가 아닐까.

내가 만약 일제 시대에 살았더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앞장서서 동족을 괴롭히는 친일파도 못했겠지만 그렇다고 내 가정을 모두 희생하여 독립운동을 할 만큼의 용기는 없었을 것이다. 인간의 행동 역시 정규분포를 따르기에 우리 모두는 후세에 가도 비난받을 나쁜 행동 또는 남들보다 뛰어난 행동을 할 확률이 모두 낮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이 행동하는 패턴을 벗어난 사람들에게 우리는 박수를 보내거나 때로는 비난을 하는 것이다. 독립운동이냐 친일이냐 그런 극단적인 선택의 기회가 없는 지금의 시대에 그래도 감사한다.

하주원(의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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