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하주원] 미디어 유발 트라우마



예전에는 직접 보거나 겪은 일이 주로 정신적 트라우마의 원인이 되었다. 물론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보듯 옛 시대에는 끔찍한 집단살해의 생존자가 되거나 공개적인 처형 등을 목격하는 일이 지금보다 잦았다. 지금 우리는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시대에 살고 있지만 다른 위험에 처해 있다. 최근에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미디어로 유발된 외상후 스트레스장애(social media induced PTSD)이다. 상영 등급이 정해져 있는 영화보다는 TV 채널을 돌리거나 유튜브의 링크를 따라가다 보면 끔찍한 장면을 접하며 우연히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어린이들의 경우 연출된 장면과 실제 뉴스를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영상을 본 것만으로도 실제 겪은 것처럼 그 장면에 대한 악몽을 꿀 수 있다. 일상에서 비슷한 장면을 접하면 움츠러들거나 가슴이 두근거리는 불안 반응을 보일 수 있다. 심할 경우 그 장면에 대한 플래시백뿐 아니라 실제 경험과 혼동하는 경우까지 생긴다.

실제 뉴스를 보고 미디어 유발 트라우마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 글로 쓴 기사보다는 화면을 통해 많이 생기는데, 나 역시 세월호 영상을 보고 실제 내 몸이 물에 잠기는 듯한 공포에 잠을 못 이뤘고, 지금도 수영을 예전만큼 즐기기가 어렵다. 삼풍 사건 이후로 백화점에 오래 있을 수가 없다. 며칠 전 접한 어린이집 차량 사망 사고의 안타까운 소식은 영상을 본 것이 아닌데도 자꾸 생각나 잠을 설쳤다. 뜨거운 자동차에 그냥 나 혼자 타서 안전벨트를 맸을 뿐인데도 자꾸 그 장면이 떠올라 눈물이 났다.

트라우마 앞에서 무력해지지 말고 청원에 동참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해 보았다. 이미 일어난 일을 돌이킬 순 없다. 책임 질 사람은 지고 제도가 정비되어 다시는 같은 일이 없어야 한다. 트라우마의 흔적은 괴롭지만 만약 충격을 받고, 놀라고, 가슴 아파하며, 재발 예방을 위해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동기가 된다면? 그렇다면 미디어 유발 트라우마는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될 수도 있을까.

하주원(의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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