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태용] 얼굴들, 마을들



도시에서, 시골 마을에서 종종 마주치게 되는 조형물과 외벽 그림들이 있다. 일종의 공공미술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수억원에 달하는 작품부터 사람들의 자발적 참여로 만들어진 작품들, 조악한 낙서 같은 그림들을 볼 수 있다. 지역 문화와 취향에 따라 작품들을 다르게 받아들이지만, 공간의 흉물 같은 작품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 고가의 조형물이 도시 한복판에 세워져 있는 것을 보면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한다. 공공미술에는 단지 눈의 즐거움이 아닌 공간에 대한 사회적·미학적 사유가 있어야 한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Visages Villages’을 보고 공공미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88살의 영화감독 아녜스 바르다와 30살의 사진작가 JR이 사진 트럭을 몰고 프랑스 외지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사진을 찍는다. 사람들이 트럭 안에서 사진을 찍으면 바로 거대한 사이즈로 출력된다. 이 사진들을 사람들의 삶이 스며든 곳에 붙이는 것이다. 철거된 광산촌의 주민, 화학 공장 노동자들, 카페 종업원, 집배원, 부둣가 노동자의 아내들 사진을 찍어 집과 공장, 컨테이너박스 등에 붙인다. 아이들의 스티커놀이 같기도 한 작업을 보고 사람들은 감동받고 희망을 얻는다. 특정 장소를 오랫동안 지켜온 사람들의 흔적이 공간에 새겨져 역사가 되는 것이다.

느린 걸음과 고집스럽고 귀여운 아녜스 바르다. 선글라스를 절대 벗지 않는 JR. 둘의 우정과 마을 사람들의 표정들이 마음에 잔잔한 물결을 만들게 된다. 아녜스가 걸어다닌 무수한 공간들과 시간들을 위해 JR은 그녀의 맨발과 노화된 눈을 찍어 화물열차에 붙인다. 화물열차는 계속 어딘가로 떠난다. 사람들은 아녜스의 눈과 발을 보거나 보지 못한다. 한 사람의 삶이 공공의 시선과 함께 예술이 되는 순간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번안된 제목에 의문이 들었다. 이 영화는 ‘얼굴들, 마을들’이면 충분하다. ‘비자주 빌라주 Visages Villages’라는 예술적 언어유희까지. 그런 공공미술을 마주하고 싶다.

김태용 (소설가·서울예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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