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황시운] 아빠와 함께 떠날 여행



SNS 친구들 중 누군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여행 중이어서, 나는 거의 매일 그들이 올리는 이국의 풍경과 생소한 음식 사진들을 본다. 이제 더는 해외여행이 특별한 이벤트가 아닌 세상이 된 것 같다. 생계를 위해 일을 하면서 동시에 소설도 써야 했기 때문에 여유가 없었다는 말은, 이제 와 생각하면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나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여유가 없는 형편인데도 시간과 돈을 투자해 낯선 곳으로 떠나는 이들은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어쩌면 그것은 형편의 문제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였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사고로 두 다리를 잃고 난 후였다.

사고 이후 해외여행 같은 건 불가능하다 여기고 포기했는데, 최근 휠체어를 타고도 갈 수 있는 여행지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 함께 어디든 가보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전 일본의 몇몇 도시에 휠체어 여행상품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됐다. 고민 끝에 일본으로 가족여행을 가자고 제안했지만 아빠는 대번에 거절하셨다. 지금 우리가 해외여행을 갈 형편이냐며 화를 내기까지 하셨다. 안 될 이유가 뭐냐고 따졌지만 아빠는 입을 다물어버리셨다. 아빠는 평생 쉬지 않고 일하셨다. 무작정 상경한 도시노동자들이 대개 그러하듯, 가진 거라곤 몸뚱이 하나뿐이었던 아빠는 당신의 몸을 갈아 가족들을 먹여 살리셨다. 그러다 은퇴할 나이가 되자 덜컥 암에 걸린 것이다. 가족들은 이제부터라도 그동안 식구들 먹여 살리느라 못해본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시라 권했지만, 아빠는 집 주변을 산책하는 것 외에 무엇도 하려 하지 않으셨다. 도대체 왜 그러시는지 늘 답답했는데, 어제 엄마가 말씀하셨다.

“아빤, 우리가 죽고 나면 네가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이 돼서 밤에 잠도 안 오신대. 한 푼이라도 남겨줘야 네가 남들한테 무시당하지 않고 살 거 아니냐고 그러시더라.”

그 말을 하는 엄마에게, 나는 꽤 쓸 만한 글쓰기 기술자여서 혼자서도 잘 살아갈 수 있다고 큰소리쳤지만, 끝내 눈물을 참을 순 없었다.

황시운(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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