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하주원] 월드컵 소외감



모든 종류의 소외감이 그렇듯 분명 잘 찾아보면 나와 똑같이 느끼는 사람이 어디엔가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 내 생각을 드러내놓고 말하기는 참 어려운 것이 소외감의 본질이다. 축제에 찬물 끼얹는 소리일 수도 있지만 나는 월드컵이 열릴 때마다 소외감을 느꼈다.

2002년에는 우리 과만 시험이 늦게 끝나 시험공부를 하며 신나는 함성 소리를 들었다. 예상을 넘어 우리나라가 4강까지 올라간 덕분에 시험이 끝나고도 우리나라 경기를 볼 수 있었다. 마지막 경기에 거리응원을 나갔다가 거리응원 행렬 속으로 행진하는 8명쯤 올라탄 경차에 발이 깔리면서 공황을 경험했다. 2006년에는 광화문에 위치한 병원에서 일하다 보니 당직 때 응급실에서 응원소리를 들었고, 정말로 다친 사람들보다도 흥에 겨워 술에 취한 사람이 많다는 사실에 더 놀랐다. 술 취해 응급실에 와서 혈압을 재는데도 ‘오 필승 코리아’를 외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극히 일부의 모습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는 괜히 월드컵까지 싫어졌던 것 같다. 응원 질서 등이 지금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월드컵에 관심이 없거나 우리나라를 간절히 응원하지 않으면 별종 취급하는 시절이 있었다. 국민이라면 응원해야 한다는 분위기는 사실 전체주의적이고, ‘축구공은 둥글다’는 월드컵 정신에 오히려 위배되는 것 같았다. 월드컵에서 설령 대한민국이 우승해도 감격의 눈물이 흐르지 않겠지만, 그런 사람도 나라를 사랑한다. 선거에 빠지지 않았고, 세금을 체납하지 않았고, 우리나라가 더욱 살기 좋아지기를 바란다. 이런 사람이 많아도 저런 사람도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단순히 정치 제도가 아니라 각자의 입장을 이해하는 다양성의 인정이 아닐까. 원래 광장은 의견을 말하고 다양한 입장을 나누는 곳인데 한 가지 목소리만 날 수는 없다. 나는 붉은 악마로 통일된 광장보다도 반대의 목소리가 서로 살아 있는 광장이 더 좋다. 세월호 재수사, 드루킹 특검, 동성애 반대, 갖가지 목소리가 공존하는 곳.

하주원(의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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