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황시운] 반공 트라우마에 대하여



열한 살 때까지 산골마을에서 자랐다. 극장이 있는 읍내는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은 족히 가야 하는 곳이었다. 아버지들은 대부분 탄을 캐는 광부였고 엄마들은 밭농사를 짓거나 양잠을 했다. 아이들은 온종일 저희들끼리 놀다가 아무 집에나 몰려가 밥을 먹었다. 그곳의 작은 초등학교에선 일 년에 두어 번 교실 벽에 흰 천을 걸고 영화를 보여줬다. 야생소년 똘이가 붉은 돼지 수령을 무찌르는 내용의 ‘똘이장군’ 시리즈나, 이승복 어린이의 일화를 다룬 기록영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같은 것들이었다. 아마도 반공교육의 일환이었을 텐데, 나는 매번 대성통곡을 해서 선생님들을 당황시켰다. 똘이의 엄마를 죽이는 승냥이 괴뢰군도, 이승복 어린이의 입을 찢는 무장공비들도 너무나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도시 학교로 전학을 온 뒤에도 반공교육은 계속됐다. 국기에 대한 맹세와 국민교육헌장을 외우지 못하면 손바닥을 맞았고, 군인 출신 교장선생님은 조회 때마다 길고 긴 훈화와 함께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게 해서 아이들을 쓰러뜨렸다. 매 학기 반공 포스터 그리기대회나 웅변대회가 열렸고, 민방위훈련 사이렌이 울리면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가 담임선생님이 말해주는 전쟁 발발 시 행동요령 같은 걸 들어야 했다. 나는 고등학교 때까지도 종종 전쟁에 관한 꿈을 꾸었다. 대부분이 거대한 돼지 형상의 붉은 수령이 나타나 나와 가족들을 처참하게 죽이는 악몽이었다.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절대로 만나지 않을 것 같았던 두 정상이 만나 한반도 비핵화와 종전을 위한 회담을 연 것이다. 기대한 만큼의 결과는 아니었지만 우리가 평화를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간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힘들었던 일들이 무시로 일어나는 역사의 한복판에서, 나는 청소년기까지도 나를 괴롭히던 반공교육의 트라우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평화보다 소중한 구호가 도대체 무엇일까. 부디, 자라나는 아이들은 나와 같은 트라우마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평화로운 세상이 오길 바랄 뿐이다.

황시운(소설가)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