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읽기] 멈출 수도, 이길 수도 없는 전쟁… 미국의 아프간 딜레마



17년째 전쟁… 美 역대 최장 트럼프, 적극 개입 선언했지만 10월 총선 앞두고 테러 급증
탈레반에 IS까지 세력 키워 인명피해·비용 늘어나기만


지난 4월 30일 베트남 전쟁이 종전 43주년을 맞았다. 미국은 1959년 전쟁에 개입해 73년 철군하기까지 14년을 베트남에서 싸웠다. 베트남 전쟁은 미국 역사상 전쟁에서 처음으로 패배한 사례가 됐으며, 베트남은 미군 철군 후 2년 만에 완전 공산화됐다. 그런데 미국은 현재 아프가니스탄에서 베트남 전쟁보다 더 긴 시간인 17년째 싸우고 있다.

최근 아프간에서는 탈레반과 이슬람국가(IS) 등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들의 자살폭탄 테러가 급증하고 있다. 오는 10월 총선을 앞두고 선거를 방해하려는 목적에서다. 탈레반과 IS는 이슬람 신정국가의 수립을 주장하며 민주선거를 반대하고 있다. 4월에만 전국에서 유권자등록센터를 겨냥한 공격이 5건 발생했다. 수도 카불에서는 3건의 폭탄 테러가 발생해 사망자만 100명이 넘었다. 선거는 당초 2015년 치러질 예정이었지만 치안 불안 때문에 3년 연기된 것이다. 하지만 과연 올해에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상황이 악화되면서 아프간 전쟁에 대한 비관론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 잡지 뉴스위크와 외교정책 전문지 포린폴리시 등이 1일자 기사에서 “지는 싸움”이라고 지적했다. 또 캐나다 CBC방송은 아프간 주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연합군 사령부를 취재한 뒤 “미국의 아프간 전략은 실패했다”고 비판했다.

아프간 전쟁은 9·11 테러 이후 미국이 테러 배후인 알카에다를 괴멸시키는 한편 알카에다에 은신처를 제공하는 탈레반 정권을 축출하기 위해 2001년 10월 아프간을 침공하면서 시작됐다. 미국은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키고 9·11 테러를 기획한 알카에다의 수괴 오사마 빈라덴을 죽였다. 하지만 미국이 2003년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중동에 힘을 쏟는 사이 탈레반은 2000년대 중반 다시 부활했다.

탈레반 정권이 붕괴한 뒤 아프간에는 미국 지원을 받는 민간 정부가 들어서 있다. 하지만 부정부패가 끊이지 않는 데다 국민의 지지도 얻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탈레반이 지방은 물론이고 카불 등 주요 도시에서 끊임없이 자살폭탄 테러를 일으킴으로써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여기에 시리아 등 중동 근거지에서 쫓겨난 IS는 2014년부터 아프간에 진출해 탈레반과 ‘테러 경쟁’을 벌이고 있다.

아프간 전쟁은 미국이 가장 오래 수행한 전쟁으로 조지 W 부시 행정부와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쏟아부은 돈만 8000억 달러(약 908조원)로 추산된다. 아프간 재건비용에도 1173억 달러(약 133조원)가 들어갔다. 이외에 미국은 아프간군 운영비를 전부 대고 있고 아프간 정부 예산의 80∼90%를 지원한다. 인명 피해도 막심해 사망자만 미군 3000명, 아프간 민간인과 군경 7만여명, 탈레반 등 무장세력 5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미국의 아프간 전쟁 개입을 비판해 왔다. 하지만 지난해 8월 입장을 바꿔 아프간에 적극적인 군사 개입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미군이 갑자기 철수할 경우 아프간이 탈레반과 IS에 넘어갈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개입주의로 노선을 정한 미국은 올 들어 역대 최대 규모의 공습을 가하고 있다. 미국의 소리(VOA) 방송은 올 1분기(1∼3월) 미 공군이 아프간에 떨어뜨린 미사일은 총 1186발로 관련 통계가 공개된 2004년 이후 가장 많았다고 전했다. 지난달 14일엔 아프간 동부 낭가르하르에 ‘폭탄의 어머니’라 불리는 GBU-43 폭탄을 투하하기도 했다.

그러나 탈레반과 IS는 미군 공격에 끈질기게 저항하는 한편 민간인을 타깃으로 한 연쇄 자살폭탄 테러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새 아프간 전략 이후 오히려 폭력과 혼란이 가중됐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미국은 아프간 전쟁에서 이길 수도, 멈출 수도, 떠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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