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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개들… ‘불편한 진실’

약 50마리의 유기견을 직접 보고 그림으로 그려 낸 조민영 작가의 2015년 작품들이다. 조 작가는 유기견을 그린 그림으로 화집을 내기도 했다. 그림 제목은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지나간 겨울바람은 차갑지 않다’ ‘고통은 겸손을 가르친다’ ‘삶은 흐른다’ ‘잃어버린 산책’. 창비 제공




‘생명’은 어디에도 없었다
번식장, 경매장, 개농장, 보호소, 도살장까지 개산업의 실태 추적
“동물이 대접받는 나라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번식장에서 보호소까지, 버려진 개들에 관한 르포’라는 부제가 달린 책을 단단한 마음으로 읽어낼 자신이 없어서였다. 불편한 진실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과 알려야 한다는 의무감이 뒤통수를 당겨왔다. 망설이다 읽기로 결심하기까지의 맥락이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이유와 겹친다.

“동물에 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의식주와 같은 기본적인 생활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일이다. 평범했던 일상이 딜레마로 전환되는 일이다. (중략) 한국사회에서 개의 분열된 위치가 만들어내는 여러 서사 때문이었다. 개가 반려동물로서 확고한 지위를 가진 곳에서는 개의 동물권을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개는 가장 나은 처지인 반려동물이자 최악의 처지일 수밖에 없는 식용동물이다.”

버려질 뻔한 개를 우연히 입양하면서 유기견에 관심을 갖게 된 소설가 하재영이 번식장 경매장 개농장 보호소 도살장을 꼼꼼히 취재해 한국 개산업의 실태를 추적한 책이다. 그 과정에서 만난 번식업자, 육견업자, 유기동물 보호소 운영자 등의 생생한 인터뷰도 담겨 있다.

수많은 개들이 ‘번식장’에서 태어나 ‘경매장’으로 넘겨지고 ‘개농장’이나 ‘보호소’에 잠시 머물다가 ‘도살장’에서 숨을 거둔다. 이 개들의 짧은 일대기를 따라가 보면 여기에 ‘생명’이란 없다. 그래서 이 책은 버려진 개들의 ‘삶’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추적기다.

가장 형편이 나을 것 같은 번식장은 도살장만큼이나 끔찍하다. 모견(암컷)과 종견(수컷)이 평생 새끼를 만들어내는 이곳은 ‘새끼 빼는 공장’이다. 출산을 담당하는 개들의 환경이 조금이나마 위생적이고 포근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을지 모른다. 실상은 배설물, 토사물, 파리와 구더기가 들끓는 좁고 어두컴컴한 감옥이다. 번식능력이 사라지거나 심하게 병이 들면 도살장으로 보내진다. 병들고 쓸모를 다한 개들은 개소주가 되거나 개고기가 되고, 누군가는 그걸 먹는다.

동물복지를 말하면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반격이 어김없이 튀어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살기 힘든 인간의 삶을 줄줄이 읊으며 위선이라거나 한가한 고민을 한다고 비판한다. 동물을 돕는다는 이유로 공격을 받는 일도 흔하다. 이에 대한 저자의 견해를 곱씹어볼 만하다.

“문제를 축소하려는 사람은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에게 우선순위를 강요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일은 동물 문제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일어난다. 나는 동물과 인간 중 하나를 택하는 대신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사람에게 묻고 싶다. 무엇이 중하고 경한지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그것을 결정했던 사람들이 교묘한 방식으로 약자를 배제해온 자들은 아니었는가.”

누군가의 고통을 함께하는 일이 으레 그렇듯 책이 전하는 진실을 따라가는 게 쉽지 않다. 저자가 인터뷰를 한 동물보호단체 ‘행강’의 박운선 대표가 한 말은 위로가 된다. “사채업자였을 때보다, 번식업자였을 때보다, (돈은 벌지 못하지만) 지금이 훨씬 행복해. 나는 지금 생명을 살리고 있으니까. 죽이는 직업은 절대 행복할 수 없어.”

이 책을 읽고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는 것은 힘겹지만 의미 있는 일이다. 생명을 살리는 데 동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동물이 대접받는 나라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동물복지를 고민하는 것은 사람을 존중하는 일이기도 하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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