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윤고은] 이력 보기



‘야생의 땅:듀랑고’는 공룡이 살던 원시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모바일 게임이다. 자급자족하며 생존하는 게 일이다보니 물건이 귀하다. 가끔 ‘워프’를 통해 현대에서 온 물건들이 발견되기도 하는데(‘지폐’의 쓰임새는 모닥불 정도에 그친다) 물건이 넘쳐나는 시대가 아니다보니 하나하나 그 쓰임새와 이력에 대해 비로소 들여다보게 된다. 이 게임이 가진 흥미로운 기능 ‘이력 보기’도 그래서 납득이 간다. 어떤 사물에 대한 이력을 터치 한 번으로 소환할 수 있는데, 이를테면 A님이 수리했습니다, A님이 포장했습니다, A님이 배치했습니다, B님이 포장했습니다…. 그렇게 사물에 얽힌 이동경로와 출처가 열람된다.

어떤 면에서는 인터넷쇼핑 과정을 연상케도 한다. 인터넷으로 영양제 하나를 구입하면 주문번호나 운송장번호 몇 자리만으로 이걸 판매자가 언제 포장했고 언제 발송했는지 지금 어디를 통과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구입물품에 대해 구매자가 확정 버튼을 누르거나 시일이 지나 그렇게 처리될 때까지 몇 줄의 이력이 남는다. 단지 거기까지만 기록된다는 게 게임 속 세계와 다른 점이다. 구매자가 택배상자를 열어서 이중삼중의 포장 단계를 걷어내고 영양제를 빼낸 후 그 다음의 경로는 더 남지 않는다. 택배상자를 비롯해서 스티로폼, 비닐 등 껍데기의 안부에 대해서는 누구도 궁금해 하지 않는다. 영양제가 들어있던 병을 버릴 때도 마찬가지다. 이런 ‘재활용쓰레기’가 원시시대로 옮겨진다면 오래 장수하며 진짜 가치를 인정받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력 보기’를 눌러도 정보가 별로 없을, 일회용 시대를 살고 있다. 애초에 시한부로 만들어진 물품들이 짧은 용도를 다한 후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소멸되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뉴스에서 연일 비닐과 페트병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장면을 내보내지만 그중에 내가 버린 걸 찾아내기란 힘들다. 물론 나와 상관없다고도 하기 힘들다. 그래서 ‘이력 보기’ 버튼을 꿈꾸게 됐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쓰레기에 대한 책임을, 그 지분을 좀 나눌 수 있게.

윤고은(소설가)

삽화=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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