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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건강] ADHD, 사춘기 반항·중2병쯤으로 방치 땐 평생 고생









청소년 ADHD 20만명 시대 치료율 7.6%로 소아의 절반
청소년기 일시적 특성으로 간주 치료 중단하는 사례 많아
비행으로 이어지거나 사회 부적응 등 어려움 겪어
약물 오남용 우려 치료 꺼리지만 적절한 처방 땐 중독 위험 없어


중학생 A군(15)은 초등학교 때부터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산만한 행동으로 또래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진단을 받고 2년 정도는 충실히 약물 치료를 받았으나 중학교에 진학하며 중단했다. 반항적 태도로 치료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사춘기에 누구나 겪는 일시적 품행문제쯤으로 생각한 부모도 더 이상 치료에 매달리지 않았다. A군은 지각과 조퇴를 반복하며 교사와 갈등이 깊어지는 등 학교생활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술과 담배를 하고 급기야 남의 물건을 훔치는 등 비행에 빠져 학교를 그만뒀다.

ADHD는 주의력 결핍과 과잉행동, 충동성 등 세 가지 특징적 증상을 보이며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질병이다. ADHD 아동의 70%는 A군처럼 치료 중단 등으로 청소년기까지 증상이 지속되며 50%는 어른이 돼서도 이어진다.

ADHD, 심각한 정서 혼란 동반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가 건강보험 진료자료를 토대로 국내 ADHD 유병률을 생애 주기별로 추정한 결과 소아(5∼14세) 5∼10%, 청소년(15∼19세) 4∼8%, 성인(20∼64세) 3∼5%로 나타났다. 이를 근거로 산출된 전체 인구 대비 ADHD 잠재 환자 수는 소아 36만명, 청소년 20만명, 성인 150만명으로 추산됐다. 학회는 최근 개최한 ‘ADHD의 날(매년 4월 5일)’ 행사에서 이 같은 내용을 공개했다.

ADHD는 시기 별로 조금씩 다른 양상을 보인다. 아동기의 대표 증상인 과잉행동(가만히 있지 못하고 산만하게 돌아다님)은 조금씩 줄어든다.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도 ADHD 증상이 남아있는 경우 학교생활을 원만히 이어가지 못하거나 친구 부모 교사와 관계가 나빠지는 등 심각한 정서적 혼란을 겪는다. 제대로 치료되지 못한 ADHD 증상은 성인기까지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기 때문에 생애 과도기인 청소년기의 ADHD 치료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문제는 청소년기 ADHD 증상을 ‘사춘기의 반항’이나 ‘중2병’으로 인한 일시적 행동쯤으로 간주해 방치하기 십상이란 점이다. 또래 관계 문제나 학교 부적응, 우울 증상 등의 원인이 ADHD의 충동성과 주의력 결핍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알지 못해 치료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신질환 치료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주변의 편견, 약물치료에 대한 낙인 효과, 청소년기 특성에 따른 환자 요인 등이 아이와 부모 모두에게 ADHD 치료의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김봉석(인제의대 상계백병원 교수) 이사장은 9일 “부모 중에는 ADHD 증상을 소아기에만 나타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거나 학교 성적이 어느 정도 유지되면 치료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부모가 일일이 챙겨주는 소아 때와 달리 청소년기에는 자신의 건강을 스스로 결정하려는 독립적 성향이 강해진다. 여기에 부모에 대한 반항심으로 청소년 스스로 치료를 거부하기도 한다. 부모의 맞벌이나 별거, 이혼 등 가족 상황 변화로 치료를 지속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19세 환자의 80%가 치료 기회 놓쳐

실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진료 통계를 통해 살펴본 지난 5년간(2013∼2017년) 청소년 ADHD 평균 치료율은 7.6%로 같은 기간 소아(14.0%)의 절반가량에 그쳤다. 특히 지난해 기준 소아 ADHD 잠재 환자 치료율은 22.3%인 반면 청소년은 13.5%였다. 청소년기의 치료 중단이 만연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김붕년 교수는 이를 ‘전환의 시기에 잃어버림(Lost in transition)’이라고 표현했다. 김 교수는 “대개 7∼8세에 ADHD 진단을 받으면 11세까지는 열심히 치료를 받지만 15∼16세부터 치료의 탈락이 가속화되고 19세에는 80%가 치료 기회를 놓친다”고 설명했다. 이어 “성인기로 이어진 ADHD 치료를 위해 재방문하는 시기는 30대 후반∼40대 초반으로 결국 25년의 치료 공백이 발생하는 셈”이라면서 “이 사이에 인생의 모든 문제가 발생한다”고 덧붙였다.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ADHD 청소년의 상황은 유아가 중학교 이상의 다양하고 복잡한 일상을 수행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집중력 장애로 인한 성적 저하, 학교생활 부적응, 친구관계에서 오는 좌절감, 잦은 우울감과 자존감 저하 등을 경험한다. 이런 증상들이 방치되면 장기적으로는 대인 관계를 지속하기 어려워 어른이 된 후에도 사회 부적응을 겪을 수 있다.

초기 치료를 통해 ADHD 증상이 나아지더라도 꾸준한 평가와 치료가 뒤따르지 않아 여러 행동 문제를 겪는 사례도 많다. 고교생 B군(17)은 초등학생 때 ADHD 진단을 받은 후 약물 치료와 심리상담을 병행해 학습 태도가 좋아지고 정서적으로도 안정을 되찾자 자의적으로 치료를 중단했다. 약물 치료에 대한 염려와 거부감이 있던 부모도 가능한 빨리 치료를 끝내고 싶어했다. 하지만 중학생이 된 후 충동 행동이 심해져 친구와 사소한 일에도 몸싸움을 하고 고교에 들어간 뒤에는 잦은 결석으로 결국 중퇴했다. 심지어 절도로 법적 문제가 생겨 현재 보호관찰을 받고 있다.

품행장애, 비행 가능성 커

ADHD 청소년은 일반 청소년에 비해 주요 정신질환을 함께 가질 확률이 훨씬 높다. 학회가 지난해 3∼12월 서울시내 특정 지역 청소년 189명(ADHD 확진 43명)을 조사한 결과, 우울 및 불안 장애로 확진 혹은 의심된 비율이 2∼4배, 품행장애는 무려 10∼20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인터넷 중독 고위험군 비율도 3.1배 높았다.

김붕년 교수는 “청소년기에는 ADHD 증상이 줄어드는 듯 보이나 기능 저하는 지속되고 공존 질병까지 결합되면 합병증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다”며서 “4명 가운데 1명에서 공격성과 행동문제를 동반한 반항장애 품행장애로 진행된다”고 말했다.

ADHD를 방치할 경우 알코올중독 같은 더 심각한 청소년 비행이나 범죄로 이어지곤 한다. 실제 학회가 지난해 7∼9월 경기도 군포 서울소년원에 보호관찰 중인 55명의 청소년을 면담한 결과 기존 병력을 가진 아이를 포함해 23.6%가 ADHD 환자로 확인됐다. 일반 청소년 ADHD 유병률이 4∼8%인 점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수준이다. 보건복지부는 법무부와 협조해 소년원내 ADHD 청소년의 효율적 치료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소아에서 성인까지 ADHD는 약물 치료가 최우선시 된다. ADHD 환자의 두뇌 집중력을 효과적으로 향상시켜 70∼85%에서 상당한 호전을 보이는 걸로 입증돼 있다. 여기에 바람직한 행동 변화를 유도하는 인지·행동 치료를 병행해야 정서적 혼란을 겪는 청소년기 ADHD 치료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아울러 부모 교육(훈련)과 상담, 가족치료도 함께 이뤄질 필요가 있다.

> 약물치료 부작용은 오해

ADHD 약물의 오·남용 우려는 치료를 꺼리거나 중단하는 또 다른 요인이다. ADHD 치료제가 소아와 청소년기 환자의 성장에 방해된다고 오해하거나 중독 위험성이 있다며 치료를 받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항간에 ADHD 치료제 성분(메틸페니데이트)이 ‘공부 잘하는 약’ ‘머리 좋아지는 약’으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김 교수는 “ADHD 약물의 경우 10명 가운데 1명꼴에서 수면 장애나 식욕부진, 1년 이상 장기 복용할 경우 드물게(100명 중 1명) 심혈관계 질환이나 성장 부진이 나타날 수 있지만 전문의 모니터링을 통해 적합한 용량과 용법으로 처방하면 큰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또 “ADHD 치료제는 적절히 처방될 경우 중독성을 갖지 않는 걸로 밝혀졌고 약사법에 따라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돼 마약류로 관리되는 것이지 마약은 아니다”고 말했다.

오히려 ADHD 약물 치료를 잘 받을 경우 흡연 음주 등 청소년기 물질 남용 위험이 85% 이상 줄어드는 것으로 연구결과 확인됐다.

김 교수는 아울러 “청소년 자녀의 경우 자율성 욕구가 강하기 때문에 매일 약 먹는 것 자체를 통제 받는 걸로 생각하기 쉽다”면서 “부모가 권위적이지 않게 자녀와 눈높이를 맞추는 자세가 중요하다. 소아 때와 달리 필요할 때만 약을 먹어도 된다는 ‘간헐적 치료’ 방식을 제안하는 등 타협함으로써 치료로 이끌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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