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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에게 묻다] “어지럼증 반복 땐 뇌신경계 이상 의심해봐야”

세란병원 뇌신경센터 어지럼증 클리닉 박지현 박사(오른쪽)가 일상생활 중 수시로 어지러움을 느껴 괴롭다고 호소하는 한 남성 환자의 평형 검사 및 균형재활 치료를 돕고 있다. 곽경근 선임기자


어지럼증이라고 하면 빈혈이나 영양부족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어지럼증은 단순히 철결핍성 빈혈이나 영양부족으로 생기는 게 아니고 우리 몸의 균형을 잡아주는 평형기관의 문제로만 발생하는 것도 아니어서 주의가 필요하다.

세란병원 뇌신경센터 어지럼증 클리닉 박지현(신경과 전문의) 박사는 9일 “말초신경과 중추신경계뿐만이 아니라 청각·골격계·근육 등 다양한 신체 부위와 관련이 있는 게 어지럼증”이라며 “어지럼증 때문에 일상생활이 힘들다면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박사는 불모지와 같던 이 분야를 2005년부터 개척해 현재 국내에서 어지럼증 환자를 가장 많이 보는 의사로 손꼽힌다. 만성 어지럼증으로 인해 일상생활 수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박 박사가 이끄는 세란병원 어지럼증 클리닉을 방문하는 환자 수가 월평균 4000여 명이다. 대부분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이들이다.

이는 국내에 만성 어지럼증으로 고통 받는 이가 그만큼 많다는 방증이다. 고령화 사회에 들어서면서 연령과 관계없이 생기는 말초성(귓속 평형기능 이상) 어지럼증보다 주로 고령 노인에게 발생하는 중추성(뇌신경계 이상) 어지럼증이 증가하고 있는 것도 한 원인이다.

세란병원은 이런 고령의 난치성 어지럼증 환자들을 위해 신경계 문제를 총체적으로 파악해 개선할 수 있는 뇌신경계 검사실과 균형감각 재활치료실을 각각 운영 중이다. 이른바 한국형 어지럼증 진단 및 치료 시스템이다. 박 박사가 2006∼2007년 2년 동안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주립대 에릭 베리(Erik Virre) 교수 연구실에서 직접 보고 배운 것을 우리 실정에 맞게 재현한 것이다.

어지럼증은 왜 생기나

의료기술이 날로 발전하는데도 유병률이 떨어지지 않고 되레 높아지는 질환이 있다. 바로 퇴행성 신경계 질환이다. 어지럼증은 이들 퇴행성 뇌질환 환자들이 호소하는 가장 흔한 증상이다.

성인의 경우 급·만성 어지럼증 유병률이 20∼30%에 이른다. 특히 60세 이상 고령자의 40%, 70세 이상 노인의 50%에서 발견될 정도로 흔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2014년 73만여명 수준이던 급·만성 어지럼증 환자 수는 2015년 76만여명, 2016년 83만여명으로 계속 증가했다.

일반적으로 어지럼증의 약 40%는 우리 몸의 평형기능을 담당하는 귓속 말초 전정기관의 이상으로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정기관은 귀의 가장 안쪽에 있는 내이(속귀)에 있다. 머리 위치나 움직임의 변화를 감지하고 중추 평형기관에 전달해 신체의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이 밖에 균형 장애 및 부정맥에 의한 실신성 어지럼증이 약 25%, 심인성 등 정신과적 문제가 약 15%, 기타 원인불명의 어지럼증이 약 10%를 차지한다. 뇌경색 등 뇌혈관질환에 의한 중추성 어지럼증도 있다. 어지럼증 문제로 병원을 찾는 이들 10명 중 1명꼴로 발견된다.

어지러운 느낌도 다양한 양상

어지러움 중에서도 주위가 빙글빙글 도는 느낌이 강한 회전성을 ‘현훈’이라고 한다. 이때는 자세가 불안하거나 안진(눈 떨림) 증상과 함께 심한 구역질이나 구토 증상이 동반된다. 귓속 전정계의 이상에 의한 ‘말초성’일 가능성이 높다.

가만히 누워 있거나 앉아 있을 때는 어지럼을 못 느끼다가 일어서거나 걸을 때 중심을 잡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균형 장애로 갑자기 쓰러지거나 비틀거리는 증상이다. 이 경우엔 신경계 이상으로 생기는 ‘중추성’ 어지럼증을 의심해야 한다. 뇌에서 균형과 보행을 담당하는 소뇌에 뇌경색이 오면 균형을 잡는 능력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보통 술에 취한 사람처럼 걸을 때 비틀거리고 한쪽으로 기울거나 쓰러지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실신성 어지럼증은 갑자기 아뜩해지는 느낌과 함께 의식을 잃을 것 같은 어지럼증이다. 주위가 빙빙 도는 현훈과 같은 느낌은 없다. 대개 자율신경계의 이상으로 발생한다.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들면서 흔들리고, 머릿속이 도는 것 같은 증상을 호소하는 이들도 있다. 전형적인 심인성 어지럼증 환자 모습이다. 이때는 사람이 많은 마트에서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어지럼증과 함께 식은땀을 흘리기도 한다. 불안장애 공황장애 광장공포증 등 정신적 원인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렇듯 다양한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뒤섞인 채 어지럼증을 일으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따라서 특정 증상 한두 가지만으로 어지럼증의 원인을 섣불리 예단해선 안 된다는 게 박 박사의 지적이다.

조기 발견 치료가 답, 재활훈련도 중요

어지럼증을 느낄 때 무엇보다 주의해야 할 것은 뇌신경계 원인질환이다. 심각한 뇌혈관질환에 의한 중추성 합병증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경우 발병초기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면 반신마비 등 후유증에 시달리거나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다. 빠른 진단과 치료가 중요한 이유다.

어지럼증은 병력이 오래됐는지, 얼마 안 됐는지와 관계없이 어떤 경우든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고 적극적 치료로 증상 완화를 도모하는 게 원칙이다. 박 박사는 특히 난치성 만성 어지럼증 환자를 대상으로 적극적 치료를 통해 90% 이상 완치 혹은 호전 효과를 얻어 주목을 받고 있다.

생명까지 위협하는 뇌신경계 원인질환을 막는 길은 잘못된 생활습관을 바로잡고 정기검진을 습관화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박 박사는 이를 위해 뇌 종합검진 프로그램과 개인맞춤 균형감각 재활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해 좋은 효과를 보고 있다.

뇌 종합검진이란 일반 건강검진 항목에 뇌MRI와 인지기능 검사(뇌의 5개 인지 영역), 치매유전자 검사 등을 추가해 퇴행성 뇌신경계 질환의 발병위험을 평가한다. 균형감각 재활 프로그램은 각자 어지럼증의 원인이 되는 감각신경과 운동신경을 집중적으로 훈련시켜 중추신경의 통합기능을 강화해주는 효과가 있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

사진=곽경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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