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서정] 화끈한 이웃



새 동네 이웃들이 꽤나 화끈하다. 이사 며칠 뒤 카스텔라를 사 들고 동네 커뮤니티 총무 역할을 한다는 집으로 머뭇머뭇 찾아갔더니, 당장에 차 모임이 소집되었다. 순식간에 모인 예닐곱 이웃들은 나이 상관없이 ‘님’자 안 붙이고 닉네임을 부르는 사이였다. 나도 엉겁결에 닉네임을 하나 꺼내놓아야 했다. 신입 환영 브런치하자. 그러자. 언제? 내일. 그러자. 그래서 식사 모임도 바로 다음 날 재까닥 해치워졌다. 신입은 회비도 면제였다.

주로 초등학교 교사 출신인 멤버들은 10여년 전 함께 땅을 장만하고 집을 지은, 동네 창설자들이다. 남의 집 현관도 비밀번호 거침없이 누르고 들어간다. 나지막한 제주 돌담이 둘러쳐진 정원들은 거의 공동 정원이다. 이 집 혹은 저 집 정원에 서넛이 모여 서서 나무와 꽃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초록이면 다 풀이겠거니 하는 신참이 대파 모종을 보고 잔디냐고 묻는 만행을 저질러도 너그럽게 넘어가 준다. 우리도 잘 몰라요, 위로하면서. 그 위로가 빈말만은 아닌 듯한 게, 곧이어 이런 대화가 오간다. 이거 쑥떡인가? 아니, 수리취떡. 음, 그래? 뭘로 만들었는데? 수리취. 음, 그럼 뭐가 들어갔는데? 수리취. 음, 그래서 뭘로 만들었는데? 수리취. 묻는 쪽이나 답하는 쪽이나 표정에도 억양에도 변화 하나 없이 태평하기만 하다. 터지는 내 폭소에는 해맑게 동참해 준다.

이웃들이 정성들여 가꾸는 정원은 황송할 정도로 예쁘다. 동백 목련 뚝뚝 떨어지고 벚꽃 하늘하늘 날리는 잔디밭 위로 튤립, 히아신스, 수선화, 꽃잔디가 색색으로 눈부시다. 스러지는 천리향 향기 뒤를 라일락 향이 쫓아 나선다. 텅 빈 우리 집 정원에 면목 없어 하면 마음대로 캐다가 옮겨 심으라고 격려해 준다. 나는 그 격려를 곧이곧대로 믿기로 한다. 진짜 옮겨 심는 기특한 사업을 벌이지는 않겠지만. 다만, 슬쩍 보니 텃밭에 대파와 상추가 심어졌던데, 저것도 마음대로 따다 먹으라고 하겠지? 입이 저절로 헤 벌어진다. 이런 이웃 복을 받다니, 하나님이 나를 좀 예뻐하시나 보다.

김서정(동화작가·평론가)

삽화=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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